성경통독 프롤과 목차
[프롤로그1안: 말씀 앞에 다시 선 날들]
겨울비와 회개의 기도
눈비가 섞여 내리는 발렌타인데이 아침, 내 생일이었다. 사역 10년을 되돌아보며 조용히 기도하던 그 날, 내 마음 한가운데엔 평안 대신 질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먹고 마시고, 전도하고 제자 삼고, 교회를 세워온 지난 날들은 분명 은혜였다. 그러나 “기근”은 여전했다. 그것은 외부 상황이 아니었다. 내면의 한계, '나'에서 비롯된 기근이었다. 마치 믿음의 여정을 잘 따라오던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갔던 모습 같았다 (창 12:10). 나 역시 사역 중에 곁길로 접어든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것 같은 음성이 들렸다.
한 통의 전화
"안녕하세요. 저 김용의입니다."
김용의 선교사님이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오래전 선교한국에서,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서 들었던 그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웨이처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당장 달려갔다. 그렇게 첫 만남의 문이 열렸다.
선교회 사무실이자 숙소에 도착했을 때, 눈비는 그치고 햇살이 내렸다. 그는 내게 사역의 여정과 웨이처치에 대해 물었고, 나는 되도록 짧게 대답했다. 대신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실패를 넘어 다시 순종으로 걸어온 이의 이야기를.
“선교사님, 순종 중에 실패하신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질문 앞에 김선교사님은 물 한 컵을 드셨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직한 고백
이야기는 6시간이나 이어졌다. 실패자의 출발선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구원의 은혜를 받은 뒤에도 인간의 최선으로 믿음을 오염시켰던 시간들, 그리고 그를 훈련시키신 하나님의 손길이 하나씩 펼쳐졌다.
나는 듣는 내내 오열했다. 그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였다. 내가 지닌 믿음의 결핍,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채 소명을 완성하려 애쓴 지난 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자 나는 통회했고, 다시 처음처럼 주님만 바라보길 소원했다.
천국을 본 모임
며칠 후, 나는 복음기도동맹의 전체모임에 초대받았다. 그곳엔 김선교사님처럼 주님을 전부로 삼은 백 명의 선교사님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성령의 평안이, 대화엔 진심이, 기도엔 뜨거움이 배어 있었다. 울고 웃으며 대화했던 그 5시간, 나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떠올렸다.
이튿날까지도 그 자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분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이런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하는가?' 그러던 중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조완순 선교사입니다. 헤브론원형학교 교장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통독
헤브론원형학교 채플 설교자로 초청받았다. 주제는 '아빠라고 부르짖으세요'(롬 8:15). 설교 내내 청소년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들은 대학 대신 선교지를 선택한 아이들이었다. 설교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부르짖는 기도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울음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부르짖음이었다.
그 후, 나는 매주 한 번 학교를 찾아갔다. 성경통독 수업을 맡게 된 것이다. 2년째, 나는 이다음 세대의 선교사들과 함께 성경 전체를 함께 읽고, 나누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의 열매다.
웨이처치와 성경통독
웨이처치는 선교적 교회다. 교회와 선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제자가 제자를 낳고, 그 제자들이 모여 교회를 이룬다. 처음엔 전도다. 천 명에게 복음을 전한다. 열 명이 반응하고, 한 명이 제자가 된다. 그는 다시 성경 전체를 배우고, 또 누군가를 제자화한다. 이 단순한 순종이 교회를 세운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성경통독의 교사였다. 성경 전체를 통독하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히고, 그분을 믿고 따르게 돕는 일. 이것이 진짜 전도이자 제자화이다.
말씀으로 돌아가기
웨이처치를 넘어, 그보다 더 본질적인 교회를 발견한 것 같다. 바로 복음기도동맹의 선교사들과 헤브론원형학교의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내게 신약의 교회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시 알려주었다. 그들은 성령의 사람이고, 성경의 사람이며, 기도의 사람이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들과 함께한 성경통독의 이야기다.
통독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성경 전체를 예수님처럼 체득하는 여정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과 함께 성경 66권을 먹고 마시며 외치고 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프롤로그2안]
눈과 비
새벽부터 비가 왔다. 늦은 겨울비였다. 얼음 알갱이가 섞여 내리더니 이내 눈으로 변했다. 그날은 발렌타인데이였는데, 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지난 십년간의 사역을 모두 뒤돌아보며 기도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매 순간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 먹고 마시는 일, 사람들을 만나는 일, 전도와 제자화와 교회 개척의 일. 그들 중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였다.
그때 나는 마치, 기근을 만난 아브람 같았다. 믿음의 조상님이 순종을 하시다 말고, 애굽으로 내려가버리셨던 그 일이,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창 12:10. 잘 순종하다가, 중간에 곁길로 새버렸던 아브람처럼, 나도 방황을 시작하고 있었다.
기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리더십 한계에 있었다. 사역은 점점 커지는데, 소명자인 내가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턱없이 모자란 것이 문제였다.
“선교적 교회개척을 통한 세계 선교의 완성!”
이것이 바로 내가 도달해야 할 가나안 땅과 같았다. 하지만 10년간의 순종 과정에서 나는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 만 같았다. 영성, 지성, 인격, 사람됨, 행정력, 실행력, 체력,…… 나는 비전 성취를 위해,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걸맞는 사람이 아닐찌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 김용의입니다.”
로그미션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수십년 전, “선교한국” 집회에서 나는 그의 설교를 여러 차례 들었던 기억이 났다. 또한 예수 전도단 화요모임에서도 그의 뜨거운 설교들은 심령에 오래 남아 있다.
“네? 그, 김용의 선교사님이라구요?”
그분은 “예수교회 회복 운동”을 하고 계셨다. 그러다 웨이처치 이야기를 듣고, 한번 만나고자 하셨다. 나는 당장 약속을 잡고, 달려갔다. 가는길은 멀었지만, 눈도 비도 멎어서 수월했다. 도착했을 때는 해가 쨍하고 나왔다.
약속장소는 선교사님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숙소이자, 선교회 사무실이었다. 김선교사님이 웨이처치와 나의 소명 순종의 과정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던지셨다. 나는 대답들을 짧게 요약적으로 전했다. 그 대신 김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분을 만난다면 묻고 싶은 질문들이 있었다.
내가 볼때 나는 실패한 사역자 같았다. 큰 비전을 소명으로 품고 10년이나 분투해왔다. 그럼에도 열매는 적고, 나는 늘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나의 인격과 리더십 그릇의 한계가 내 눈에 문제였다. 김선교사님은 내가 존경해오던 사역자이다. 그분의 역사에 비하면, 내가 10년 겪은 일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질문들이 사역 현장에서 들끓었다. 다른 무엇보다 인격적 신앙적 한계에 부딪힌 리더십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게 아니라면, 김선교사님의 40대 이야기라도 듣고 싶었다. 가난한 마음으로 그를 마주한 나는 이렇게 질문을 시작했다.
“선교사님, 순종 중에 실패하신 이야기가 궁금해요!”
질문앞에 잠시 생각하시던 김선교사님은 물을 한컵 잡수셨다. 그리고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기 시작하셨다.
6시간
그때부터 6시간이나 지속된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 이야기는 자기 자신이 어떤 실패자로 태어났는지 부터 시작했다. 그런 자신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예수님과 만났다. 그러나 구원의 은혜와 소명을 받았음에도 자기 최선으로 믿음에 실패했다. 이야기는 상세히 이어졌다. 주님이 그분에게 어떻게 믿음 훈련을 시켜 주셨는지, 기가 막힌 장면들이 펼쳐졌다.
이야기 도중 나는 몇번이나 오열했다. 그분의 이야기는 내가 꼭 들었어야 할 말씀이었다. 이를 통해 전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사명자인 내가 어떤 식으로 오염시켰는지가 보였다. “인간의 최선”으로, “믿음의 결핍”을 만들어대던 내 모습도 읽혔다. 주님만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던 과거가 마음의 수면 위로 드러나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김선교사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 귀에는 온통, 내 이야기였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자 통회하는 마음이 되어있었다. 주님만 바라고, 주님만 위하는 인생이 되고자 하는 소원도 샘솟았다.
교제를 마치고 로그미션을 출발하는데, 김선교사님이 또 다른 초대를 해주셨다.
“우리는 한달에 두번 전체모임을 하는데, 다음 전체모임에 오셔서, 웨이처치 이야기를 좀 길게 나눠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체모임
얼마뒤, 나는 전체모임에 갔다. 그곳에는 김선교사님같은 분들이 100명 정도 더 있었다. 그분들은 로그미션뿐 아니라, 순회선교단을 비롯해, “복음기도 동맹” 식구들이었다. 내 눈에 그분들은 신앙의 고수들이었다.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며, 주님만 따르는 선교사님들이었다. 그분들은 표정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행동이 달랐다. 놀라웠다.
나는 여러 선교단체들과 교회들을 방문하는 설교자이다. 그럼에도 어디서도 그분들만큼 성령충만한 분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부탁 받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시간이나 주어졌다. 웨이처치의 배경과 진행과 현 주소에 대한 이야기를 그분들과 나누었다.
그 현장의 분위기는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 될것같다. 어린아이들처럼 울고 웃으시던 그 선교사님들때문에, 그 곳은 천국 같았다.
전체모임에 다녀오고 하루가 지났다. 내 생각은 여전히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 이분들은 누구일까? 뭐하는 사람들이지? 어떻게 세상에 이런 천국의 모형이 존재할 수 있는것이지?’
그분들은 성경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서로를 사랑으로 대하던 모습, 대화하던 모습, 식사하던 모습, 간절히 기도하던 모습, 울부짖으며 찬양드리던 모습……
그때 전화벨이 또 울렸다.
“안녕하세요. 조완순 선교사, 헤브론 원형학교 교장입니다”
헤브론원형학교
전체모임 직후였다. 헤브론 원형학교 채플 설교자로 나는 초대 받았다. 그때 한참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책을 쓰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로마서 8장 15절을 요절로 삼아서 “아빠라고 부르짖으세요”라는 제목의 설교를 진행했다. 놀라웠다. 그곳에 모여있는 100명쯤 되보이던 청소년들의 반응이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학대신 선교지를 선택한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졸업과 동시에 선교사로 나가려고 준비중인 학생들이었다. 설교는 한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설교하는 내내 반짝거리던 학생들 한명 한명의 눈빛들이 내게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 했다. 설교를 마치자, 여기 저기서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각국의 선교지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다. 내 연약함들이 그들의 외침 앞에 모두 산산 조각 나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다시 몇주가 지났다. 주 1회 학교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성경통독 수업 때문이었다. 다음세대 선교사들중 한 학년의 성경 강의가 내게 주어졌다. 선교사로 파송받을 학생들과 함께 성경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그리고 2년째 그 수업을 진행중이다. “헤브론 성경통독!”
예수가 그리스도!
웨이처치는 교회와 선교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 둘이 한 몸이 되어있는 교회, 흔히 말하는 “선교적 교회”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웨이처치는 건물이나 행사가 아닌 제자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성령의 사람 한명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는 잠재적 제자, 제자깜을 찾을 목적으로 스스로 전도한다. 이때 그는 선교학적 통계에 근거한 “1,000개의 복음의 씨앗” 전략을 따른다 (1,000명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면 10명이 반응하고, 그 10명 중 한 명이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우선 전도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린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소식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천명에게 말한다. 그다음, 반응을 살핀다.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을 골라내어 다시 만난다.
그들 중 다시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한 재목인 “제자깜”을 찾아낸다. 일단 찾게 되면, 그는 섬김을 시작한다. 이때의 섬김은 다음 명령을 토대로 실행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제자깜을 찾아낸 후가 중요하다. 그때부터 진짜 전도의 목적인 제자화가 진행된다. 제자화의 핵심은 성경 전체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 통독적 관점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고, 예수님을 지속해서 믿고 따르게 돕는 일을 한다.
이러한 과정이 웨이처치를 세운다. 그래서 나는 교회 개척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성경통독의 교사였다.
그러다가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일은 더욱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앞서 만났던 사람들(“복음기도동맹”의 선교사님들과 “헤브론원형학교”의 학생들)은 웨이처치 보다도 더 웨이처치였다. 그들은 내 경험속의 어떤 교회보다도 더 성경적인 교회였다. 그들의 믿음과 순종의 수준과 공동체의 모습은 신약성경에서 막 뛰쳐나온 것만 같았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전도하고 제자화를 진행한다. 그들은 철저히 성경과 기도를 중심으로 성령님께 순종하여 움직인다. 그들은 모든것을 통용하는 신앙 공동체이며, 신불신을 막론하고, 주변인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는다. 내 눈에 그들만큼 성경적 선교단체이자 교회인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들에게 지난 2년간 성경통독을 가르치며 매번 “마라나타!”를 신나게 외치고 있다. 성경 66권을 주식으로 삼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는 곳곳에서 가르칠 선교요원들이 지금 무럭 무럭 자라고 있다.
여기, 그들과 함께 나눈 성경통독 이야기의 핵심을 이 책에 담았다.
[목차1안]
1장. 말씀 앞에 다시 서다
Returning to the Word: The Crisis and the Call
개인의 위기와 부르심이 말씀으로 인도되는 여정
(개인적 회개, 정체성 회복, 통독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챕터)
(1)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된 질문
(2) “나”라는 기근을 마주하다
(3) 소명의 무게, 순종의 흔들림
(4) 실패와 전화벨: 하나님의 간섭
(5) 다시 말씀 앞으로 부르시는 은혜
(6) 성경통독, 믿음의 전환점
2장. 왜 성경을 '전체로' 읽어야 하는가
The Whole Counsel of God: Reading the Bible Biblically
부분이 아닌 ‘전체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통독의 의미
(성경은 단편적 교훈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점을 설명하기)
(1) 성경은 한 권의 이야기다
(2)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흐르는 복음
(3) 선택된 본문이 아니라 연결된 이야기
(4) 예수를 증언하는 모든 글
(5) 단절된 읽기에서 벗어나기
(6) 전체를 읽을 때 비로소 보이는 그리스도
3장.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통독
Seeing Christ in All Scripture
누가복음 24장의 관점: 성경은 예수에 대한 증언이다
(구속사적 읽기, “성경은 어떻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기)
(1) 누가복음 24장, 성경해석의 마스터키
(2)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이 가리킨 분
(3) “기록된 바…”라는 주님의 통독 방식
(4)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
(5) 십자가와 부활, 성경의 중심
(6) 베드로의 설교와 성경의 연결
(7) 바울의 복음은 구약의 재해석
(8) 신약은 구약 위에 세워진 구조물
(9)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향한다
(10) 성경통독은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
4장.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지상명령
The Great Commission and Biblical Obedience
마태복음 28:19-20이 왜 성경통독의 핵심이 되는가
(성경통독은 제자화를 위한 실질적 순종의 출발점임을 설명하기)
(1) 마태복음 28:19–20 제자화 명령
(2) 가르쳐 지키게 하라
(3) 말씀은 순종으로 이어져야
(4) 통독은 제자도의 훈련이다
(5) 성경이 전도와 제자화를 낳는다
(6) 순종하는 공동체의 기초는 말씀
5장. 성령의 사람, 말씀의 공동체
Spirit-Led and Word-Centered Communities
성경통독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꽃핀다
(사도행전 교회의 성경 중심성과 성령 순종의 조화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
(1) 초대교회는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2) 사도행전의 말씀 공동체
(3) 성령과 말씀은 분리되지 않는다
(4) 통독은 공동체적 훈련이다
(5) 말씀과 기도로 세워진 교회
(6) 성경 중심의 영적 리더십
6장. 성경통독, 제자의 영성 훈련
Bible Reading as Discipleship Practice
성경읽기는 제자의 삶의 중심 훈련이다
(“기도, 순종, 전도의 실천을 위한 근육 형성으로서 통독”이라는 관점 제시하기)
(1) 말씀은 제자의 기본 식사
(2) 기도와 통독의 병행훈련
(3) 통독은 인격을 다듬는다
(4) 성경을 삶으로 살아내기
(5) 반복 읽기의 영적 내공
(6)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 되기
7장. 성경통독으로 교회를 개척하다
Church Planting by the Scripture
말씀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교회를 세운다
(웨이처치 스타일의 ‘선교적 교회개척’ 모델과 통독의 접점)
(1) 성경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회
(2) 성경에서 태동한 공동체
(3) 말씀은 사람을 세운다
(4) 전도–제자화–교회의 흐름
(5) 성경이 이끄는 교회 개척
(6) 교회개척자는 통독의 사람
8장. 다음 세대와 함께하는 말씀 훈련
Equipping the Next Generation in the Word
헤브론원형학교 성경통독 이야기
(다음세대 선교사가 자라고 있는 현장)
(1) 성경통독 교육, 왜 중요한가
(2) 말씀은 세대 간 유산이다
(3) 성경통독이 세상 교육을 이긴다
(4) 다음세대를 위한 커리큘럼 설계
(5) 미래 교회는 말씀세대로 세워진다
9장. 성경으로 변하는 삶, 변하는 공동체
Transformation by the Word
성경이 어떻게 인격과 문화, 공동체를 변화시키는가
(말씀을 통해 선교지 사례들을 제시하기)
(1) 로마서 12:2, 마음을 새롭게 하라
(2) 성경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3) 말씀이 이끄는 윤리와 가치
(4) 가정, 직장, 교회가 변하는 이유
(5) 회복은 말씀에서 시작된다
(6) 성경통독은 성숙한 공동체를 낳는다
10장. 마라나타! 예수를 전하는 인생
Proclaiming Christ Until He Comes
성경통독은 결국 복음 선포로 이어진다
(통독은 끝이 아니라 선교적 삶으로의 ‘보냄’이다)
(1) 성경통독은 선교적 삶을 낳는다
(2) 말씀이 머무는 곳에 복음이 있다
(3) 전도는 성경적 확신에서 흘러나온다
(4) 말씀 있는 선교사, 복음 있는 교회
(5) 마라나타의 부르짖음
(6)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라
[목차 2안]
헤브론 성경통독: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읽다
1장. 왜 성경통독인가
(1) 기근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2) 다시 불러주신 하나님의 말씀
(3) 성경통독이란 무엇인가
(4) 성경통독을 해야 하는 성경적 이유들
(5) 성경통독을 해야 하는 실질적 이유들
(6) 예수님의 ‘모든 것’을 가르치려면, 모든 것을 읽어야 한다
2장.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통전적으로’ 보다
(7) 성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한 책이다.
(8) 여자의 후손
(9) 가죽옷
(10)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흐르는 복음
(11) 눈이 밝아져 성경을 깨달은 엠마오 제자들
(1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성경은 열린다
3장. 성경을 읽는다는 것
(13) 통독은 통과의례가 아니다
(14) 선택된 본문이 아니라 연결된 이야기
(15)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라
(16)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들
(17) 읽을수록 더 목마른 책, 성경
(18) 참 선지자 VS 거짓 선지자
4장. 성경통독과 제자화: 말씀을 살아낸다는 것
(19) 성경통독은 제자훈련의 모든것이다.
(20) “가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의 구조
(21) 기도와 말씀은 함께 간다.
(22) 말씀이 제자를 만든다
(23) 훈련이 아닌 관계로서의 통독
(24) 하나님의 형상: 성경이 가르치는 제자상(弟子像)
5장. 성령과 통독: 불로 기록된 책
(25) 하나님을 경외함: 성령이 불을 붙이지 않으면 읽어도 불탄다
(26) 시가서의 위치와 성경통독
(27) 욥기 이야기
(2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29) 성령세례 직후 제자들은 성경을 가르쳤다.
(30) 그분과 함께 읽는 책: 성령님이 성경의 원 저자시자 진정한 선생이시다.
6장. 헤브론 이야기
(31) “아빠라고 부르짖으세요”설교 이후 이야기
(32) 대학 대신 선교지를 택한 아이들이 있다구요?!
(33) 성경통독 수업 첫날
(34) 함께 읽고 외치며
(35) 다음세대 선교사들과 66권을 걷다
(36) 말씀을 심으면 민족을 낳는다
7장. 읽는 공동체, 살아있는 교회
(37) ‘말씀’이 중심에 있는 사람들
(38) 선교단체보다 교회 같았던 그 공동체
(39)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경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집합
(40) 성경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기쁨
(41) 성경통독이 ‘교회됨’을 낳는다
(42) ‘복음기도동맹’에서 본 사도행전의 그림자
8장. 삶을 뚫는 통독 루틴 만들기
(43) 하루 네 쪽, 1년 1독으로 시작하기, 단순한 구조를 만들기
(44) 반복하기
(45) 말씀을 일상에 고정시키는 방법: ‘들리는 성경’, ‘읽는 기도’
(46) 통독 슬럼프 탈출법
(47) 통독의 가장 큰 적은 ‘완벽주의’다
(48) 공동체와 함께 성경통독
9장. 전도와 통독: 교회개척의 실제
(49) 복음의 씨앗 천 개, 제자 하나
(50) 제자깜을 찾는 눈은 말씀 속에서 열린다
(51) 예수를 전하면, 통독으로 이어져야 한다
(52) 교회는 전도된 자가 성경 전체를 따라갈 때 시작된다
(53) 성경통독정체성으로 교회를 세운다
(54) 성경통독은 ‘사도적 교회’의 토대다
10장. 마라나타: 성경으로 다시 오실 그분을 보다
(55) 계시록은 종말의 시계가 아니라 예수의 대면이다
(56) 성경을 통독하면 부르짖게 된다
(57) ‘마라나타!’는 가장 성경적인 외침이다
(58) 마지막 날에도 살아남는 사람은 말씀의 사람
(59)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60) 다시 시작하자, 처음처럼, 성경으로부터
(끄적끄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통독
누가복음 24장, 성경해석의 마스터키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이 가리킨 분
“기록된 바…”라는 주님의 통독 방식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성경의 중심
베드로의 설교와 성경의 연결
바울의 복음은 구약의 재해석
신약은 구약 위에 세워진 구조물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향한다
성경통독은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