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orjay 2025. 5. 31. 13:15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구절별로 들여다보기]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의 불임은 창세기 11:30에서 부터 나온 신학적 긴장.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창 11:30)

하갈은 애굽 사람. 앞서 12장에 애굽에 내려갔을 때 얻은 여종일 가능성이 큼.

인간적 결정이 훗날 문제의 씨앗이 되는 패턴을 보여줌.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상황 사이의 긴장을 반복적으로 다룬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 해결책을 제안.

“혹 그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에서 사래의 믿음 없음과 자기 주도적 시도가 드러남.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듣는 것은 창 3장에서 아담이 하와의 제안을 들은 장면과 문학적 구조를 공유.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10년의 기다림은 인간적 기준에서는 충분했으나,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달랐다.

하갈을 아내로 ‘주는’ 행위는 고대 근동의 대리출산 제도를 따른 것.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손은 이런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임신은 하갈의 입지를 변화시켰다. 하갈은 자신의 위치를 오해하고 여주인을 멸시했다. 이는 신분 역전 욕망과 인간 본성의 죄성을 드러내며, 약속의 자녀가 아닌 인간적 방책이 초래한 갈등의 시작이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래는 책임을 아브람에게 전가한다.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는 말은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종교적 언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불신앙의 결과를 남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죄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본성을 동반하며, 스스로는 책임 질 수 없는 것이 죄의 본성이기도 하다.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주석:
아브람은 책임지지 않고 사래에게 권한을 넘긴다. 이로 인해 하갈은 학대를 받고 광야로 도망친다. 이 장면은 약자에게 임하는 억압의 구조를 보여준다. 하갈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처럼 보이지만, 그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이어진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 샘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성경에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

하나님의 사자가 한 여종을 찾아오신다. 은혜다.

‘술 길’은 애굽으로 가는 길이며, 하갈은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음을 보여준다.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하나님은 하갈을 ‘사래의 여종’으로 부르며 그녀의 정체성을 상기시킨다. 이는 질서를 회복시키려는 신적 의도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질문은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갈이 자기 위치를 돌아보게 하려는 것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자는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명령한다. 이는 당시의 가부장제 질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언약의 줄기를 이어가기 위한 명령이다. 하갈에게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 →15절에서 설명.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이 약속은 하갈에게 직접 주어진 축복이다. 이는 이스마엘의 후손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약속은 이삭을 통해 성취되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축복하신다.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20-21)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이다. 이는 하갈의 고통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상징한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난 이방 여성으로서 특별한 위치를 부여받는다.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 것이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이 말씀은 이스마엘의 성격과 운명을 예언한다. 들나귀는 자유롭지만 거칠고 통제가 어렵다. 이는 이스마엘 족속이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존재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가 함이라

하갈은 하나님을 "엘 로이(감찰하시는 하나님)"로 고백한다.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께 이름을 붙인 첫 여성이 이방인 하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학적 반전이다. 하갈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첫 여성이 되었고, "엘 로이"라는 신앙고백의 주체가 되었다.
하갈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 대화한 최초의 여성. 이방 여성 중에서 가장 깊이 있는 신앙 경험자로 기록됨.
여기서 하나님은 애굽 여종(이방인 죄인)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심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브엘 라해 로이’는 “살아계셔서 나를 감찰하시는 분의 샘”이라는 뜻이다. 이 장소는 하갈과 하나님의 만남을 기념하는 성지가 된다.

 

15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아왔고, 약속대로 아들을 낳는다. 아브람이 그 이름을 “이스마엘”로 부른 것은 하갈의 신앙 고백이 전달되었음을 보여준다.

(1) 역사적으로: 이스마엘 자손(아랍 민족)과 이삭 자손(이스라엘)은 구약·신약·오늘날 중동까지 지속적 갈등의 구도에 놓여 있다.
이는 창세기 16:12의 성취다. 

(2)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이 갈등은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속사의 대조적 구조를 강화한다: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 4:22-31)

여기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 자”로, 사라와 이삭을 “약속을 따라 난 자”로 설명한다.

성경은 이스마엘과 그 후손을 구속사의 맥락 안에서 복음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대조군으로 보여준다.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이 구절은 시간적 단락을 형성한다. 아브람은 이 때 86세였고,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이 아님이 곧 드러날 것이다. 이 구절은 다음 장(창 17장)의 13년 후 사건을 위한 준비다.


[창세기 3장과 비교]

1. “여자의 제안과 남자의 수용” (창 3:17 vs 창 16:2)

창세기 3:17 שָׁמַעְתָּ לְקוֹל אִשְׁתֶּךָ (샤마타 르콜 이쉬테카)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들었음으로”

창세기 16:2 שָׁמַע אַבְרָם לְקוֹל שָׂרַי (샤마 아브람 르콜 사라이)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 두 구절 모두 "샤마 르콜 + 여자" 구조. 하나님의 음성 대신 여자의 음성을 따랐음을 강조. 성경 전체에서 “샤마(שָׁמַע)”는 ‘청종하다, 복종하다’의 의미를 갖음. 순종적 태도.

 

2. “여자의 제안”: 선악과 → 여종

창세기 3:6 וַתִּקַּח מִפִּרְיוֹ וַתֹּאכַל וַתִּתֵּן גַּם לְאִישָׁהּ עִמָּהּ וַיֹּאכַל (바티카흐 미피르요 바토켈 바티텐 감 레이샤 이마 바요켈)
“그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16:2 בֹּא-נָא אֶל-שִׁפְחָתִי… וַתִּתֵּן אֹתָהּ לְאַבְרָם אִישָׁהּ לוֹ לְאִשָּׁה (보-나 엘-쉬프하티… 바티텐 오타 르아브람 이샤 로 레이샤)
“내 여종에게 들어가소서… 사래가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창3:6과 창16:2 모두 바티텐(וַתִּתֵּן) 여자 → 남자로 뭔가를 주는 구조 반복. 타락과 언약 파기의 패턴

 

3. “남자의 반응: 무언의 수동성”

두 본문에서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창3장의 아담도, 창16장의 아브람도 모두 자기 입장을 내세우지 않음.
⟶ 이는 가장(리더십)의 방임으로 연결, 이후 파생되는 혼란의 책임을 여인에게 전가 시키는 구조

 

4. “하나님의 질문: 어디에 있느냐?”

창세기 3:9 אַיֶּכָּה (아예카)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16:8 אֵי-מִזֶּה בָאת וְאָנָה תֵלֵכִי (에이-미제 바트 베아나 텔레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 하나님의 질문은 공통적으로 정체성과 방향을 묻는 질문. 이는 심판의 전조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초대.

 

5. “후손의 약속: 두 길로 갈라지는 씨”

창세기 3:15 זַרְעָהּ… יְשׁוּפְךָ רֹאשׁ (자르아… 예슈프카 로쉬)
여자의 후손…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창세기 16:10 הַרְבָּה אַרְבֶּה אֶת-זַרְעֵךְ (하르바 아르베 에트 자르에크)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 두 구절 모두 ‘자라(זרע, 씨, 후손)’를 중심으로 다음 세대에 대한 약속을 주심.
그러나 창3:15는 구속의 씨, 창16:10은 이삭이 아닌 육신적 씨에 대한 예언으로, 갈라디아서에서는 이 둘을 대조적으로 해석 (갈 4:22–31).

 


[설교노트]

1. 인간의 조급함, 신앙의 위기

사래의 불임과 하갈을 통한 대리 출산 제안 →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 소개

문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 방법을 사용한 결과

오늘날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 나가려는 유혹에 직면해 있음

 

 

2.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흔들리는 소명자 (1–6절)

(1) 사래의 불신앙적 제안(하나님에 대한 근거 없는 단정: "2...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 아브람의 무비판적 동의 창 3장에서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고 행동한 패턴의 반복

(2) [하갈의 멸시 + 사래의 학대] → 인간의 자율적 시도가 낳은 고통

(3) 창 12장의 약속(큰 민족, 자손)과의 대비 → 하나님만이 약속을 이루심

(4) 갈 4:22–31: “육체를 따라 난 자녀”와 “약속을 따라 난 자녀”의 대비 예표

 

3. 광야의 하갈을 찾아오신 하나님 (7–14절)

(1) 하나님은 언약의 계보 밖에 있는 이방 여종에게도 찾아오신다

(2) 엘 로이: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 →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인이 하나님께 붙인 이름

(3) "이방인 여자"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8)

 

4. 인간의 실패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 (15–16절)

(1) 하갈의 순종 + 아브람의 수용 →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됨

(2) 그러나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님 →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수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음

(3) 오직 약속의 자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유업이 이어짐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롬 9:6–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9)

(4) 하나님은 하갈을 보셨고(엘 로이), 하나님께서 들으셨다(이스마엘)

(5) 우리도 그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존재임

(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약속의 자녀”, “유업의 상속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감찰 아래 있는 자”로 부르심 받았다

(7) 실패의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 은혜가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났다

 

5. 적용

적용 질문
신앙생활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기보다 앞서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관계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어떤 상처와 충돌이 있는가?”
복음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당신을 보시고, 들으시며, 찾아오신다”
종말론 “우리는 약속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