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코칭 VS 선별 과정
나는 교회 개척자이다. 흔히 선교적 교회라고 부르는 형태로 지속 중이다. 이 일은 전도로 시작한다. 불신자 뿐만 아니라 신자에게도, 아는 사람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도 예수님을 전한다 딤후4:2.
전도의 목적은 제자감을 찾는데 있다. 제자감, 성경은 그들을 “합당한 자” 마10:11 라고 부른다. 예수님에 대해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제자감으로 합당하지 않다. 복음 전파자를 환영하지 않는 사람도 합당한 자가 아니다 마10:14.
전도는 모두에게 하지만, 제자훈련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 훈련과정은 "수동적 성장코칭"이라기 보다는 "능동적 선별과정"이라야 맞다. 그것이 성경적이며, 상식적인데다가, 효과적이기까지 하다.
(1) 성경적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선교와 구제와 사랑의 사역도 그렇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나, 교인이 되는 것, 그리고 교회 리더십이 되는 자격 등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과정이 아니다.
성경을 보라. 예수님의 12제자들도 모두가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하나는 제 직무를 버리고 스스로 다른 길로 갔다 행1:25. 초대교회에서도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였던 것은 아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를 속이다 죽었다 행5:1-11. 심지어 교인이 되는 것 자체도 박해와 죽음을 통과해야 가능했다 딤후3:12. 그게 다가 아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은 심지어 더 높은 수준을 요구 받았다. 모두에게 거의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탁월한 사람이어야 했다 딤전3:1-16.
성경과 지금 교회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해서 성경이 틀린것이 아니다.
(2) 상식적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상식적이다.
첫째, "선교적 교회"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선교적 교회는 주일예배 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한 공간에 앉혀놓아야 한다는 사명이 없다. 그 대신 제자화 하려는 사명이 있다. 교회의 성장과 확산 역시 제자화를 통해서다. 선교적 교회는 대그룹 모임 회중에 대한 획일적 관리 시스템이 아니다. 그 대신 한번에 한 영혼씩 제자화 하려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다.
이런 교회는 모든 성도가 제자화를 진행한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전파를 한다. 제자화 하려는 사람들에게 리더십이 있고, 제자화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교회 문화에서 뒷전이 된다.
선교적 교회의 독특한 제자화 문화는 제자화 하는 사람이 결정한다. 이것은 저마다 전도의 과정에서 제자감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공통 열의와 행동이다. 제자감은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다. 예수님께 관심 없지만 그저 교회 모임에 다른 이유로 앉아있는 사람은 제자감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선교적 교회의 전도자가 자신의 인생을 바쳐 함께 "지내야"하는 대상이다 마10:11. 소명자의 시간과 에너지다. 제자화 되기 싫다는 사람에게 낭비할 수 없이 소중하다. 이런 제자화 과정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영혼의 번식이 일어나야 선교적 교회가 선다.
둘째, 학문 기관을 포함한 일반 사회조직 어디서도 상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이가 자전거 동호회에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가 자전거만은 타기 싫어한다면? 오히려 자전거 라이딩 모임때 마다 나가서 뜨개질을 하고있다면? 동호회의 다른 회원들이 자신의 자전거를 내려놓고 그때부터 뜨개질을 함께 할까? 아니면, 자전거 라이딩 시간에 신입부원 입맛에 맞추어 계획을 수정할까? 자전거를 타는 대신 함께 뜨개질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라도 할까?
어느 사회나 해당 문화가 있다. 그 문화가 그 사회를 대변한다. 어느 사회에 새로 들어가려면 그는 기존 문화를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동호회 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진학만 해도 그렇다. 대학마다 모집 요강이 있고 지원자들은 그에 맞춰 자신을 준비한다. 어떤 신입생이든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대학에서 억지로 데려다 수업에 앉혀놓는 법이 없다. 그렇게 대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대학의 학풍이 무너질것이다.
군대나 기업도 그렇다. 자신의 기준을 제시하며 그에 걸맞는 사람만 선출한다. 이것은 대단하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상식이다. 어느 부대가 자신들의 복무신조를 반대하거나 싫어하거나 동화되지 않으려는 병사를 환영하겠는가? 어느 회사가 설립이념을 거부하는 신입사원을 받아들이겠는가?
어느 사회에 갖다 대도 입단을 위한 선별은 상식이다.
(3) 효과적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이다. 끼리끼리 모인다. 기본 구성원이 누구인지가 그 사회 문화를 결정하고, 이것으로부터 확장된다. 만약 교회가 교회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에 집중한다면 오히려 비 효과적이다. 이미 선교적 교회를 이뤄가며 인생을 이에 바쳐 헌신한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도 함께 흩어진다. 그들의 삶은 고스란히 본인의 소명, 그리스도와 제자화에 집중되야 마땅하다.
교회의 핵은 예수님이다. 그분께 집중했거나, 집중하기로 선언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흔들리는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오해하면 혼나야 하고, 바다위를 걸으면서도 하필 예수님이 아닌 바람을 쳐다보면 물에 빠져야 마땅하다 마14:26-30.
조금 전까지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시라는 신앙고백을 해 놓고, 뒤이어 예수님의 길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말을 한다면 사탄 소리를 들어야 당연하다 막8:33.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누구나에게 구원의 기회를 열어놓는 것이 맞다 벧후3:9. 그러나 또 다른 편에서는 교회를 할 사람들을 가려내야 하는 것도 맞다 눅10:1-16.
교회는 교회를 할 사람들을 "선별"하는 훈련과정을 제시해야한다. 싫다는 사람들을 "뒤에서" 쫓으면 안된다. 모범을 "앞에" 세워 따르도록 디자인 해야 맞다. 제자 중심으로 나머지를 재정렬해야 스스로 제자화 하는 사람들 주류가 된다. 제자화 문화가 생긴다. 그래야 자발적 확장이 일어난다.
제자화를 통한 확장은 한 사람씩 더하는 수준이 아니다. 곱하기의 개념으로 늘어난다. 한 사람이 일년에 한명씩 전도해서 교회에 앉혀놓는다 치자. 그러면 첫해에 365명, 두번째 해에는 730명,…… 이런식으로 16년이 지나면 6천명이 조금 안된다.
한편, 4세대 제자화를 한 사람이 일년에 2명씩만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첫해에는 본인까지 3명, 두번째 해는 9명, 세번째 해는 27명…… 이런 식으로 16년이 지나면 세계 복음화가 가능하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마8:22.
끝까지가라, 117쪽.
'웨이처치 설교및 강의 > CPC강의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암동CPC시즌2 week4. (0) | 2020.07.14 |
---|---|
0628 11am.@검암동. CPC씨즌2. 1과 (0) | 2020.06.27 |
week4. 나는 모범을 보이는데 헌신하고 있는가? (0) | 2020.06.04 |
나는 의도적으로 복음 전할 사람을 찾고 있는가? (0) | 2020.05.28 |
남다른 신앙고백이 있는가? (0) | 2020.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