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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공간

안된다는 말에 대한 생각

 

신학생중 30%정도만 목사안수를 받는다.

목사중 약 30%미만이 사역을 한다.

사역자들 중 약 5%가 교회개척을 한다.

개척자들 중 약 15%가 3년 이상,

5%가 5년 이상 그 교회를 지속한다.

 

통계를 보면서 한숨쉬는 소명자분들이 질문을 해댄다.

"잘 안돼는데요... 어쩌죠?"

이 질문으로 오히려 반문을 던지고싶다.

이 통계가 과연 "안된다"는 뜻인가?

 

예를 들자.

여기 또 다른 통계 하나가 있다.

특전사 훈련생도중 1% 미만이 707부대에 뽑힌다.

훈련생도들이라고 모두가 군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네이비씰은 훈련생도들중 25%,

UDT는 21%,

델타포스는 12%만이

"기초훈련"을 간.신.히. 통과한다.

 

생각해보라.

이런 통계를 보면서도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지...

 

오히려 "남은 사람들이 참 특별하다"라는 생각이 상식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기 소명에 있어서 누군가는

"잘 안된다"는 생각이 상식에 앞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을 위해 또 다른 통계를 하나 보자.

한 아이가 5살이 될 때 까지 "안돼"라는 말을 약4만5천번쯤 듣는다.

반면 "돼"라는 말은 5천번쯤 듣는다.

대학생 100명을 추적 조사해 보면,

그들 중 80명은 20년 뒤 자신이 학생때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하고싶은 말이 뭐냐면...

사회 어느 영역에서나

성공비율 평균이 5%미만이라는 상식이다.

 

꿈과 소명을 이루는 길은

안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걸 뒤집어봐라.

 

된다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성공하기가 더 어렵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반면, 안된다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는

안되는 것을 되게 한 사람이 적다.

여기에 성공의 기회가 있다.

 

안된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길에서는

되게하는 사람의 등장이

훨씬 돋보인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안되는 상황"을 이겨냈다.

 

그 비율이 적은 것은 상식이다.

 

누구나 아는 상식은

실패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안되면

되게하라.

 

거기에 성공이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7:13-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렘1:7).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잠13:12).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