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CLUB 에세이
권하람
목사님께서 처음 하신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서 하라는 말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앉아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인데 나의 삶에서 이것을 잊기가 얼마나 쉬운지..
나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무엇이든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 하라’ 이 말을 다시 한번 새겨듣게 되었다. 왜냐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 사는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가치를 내 삶에서 경험했다는 말로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간을 통해서 내 안에 풀린 개념도 있었다.
바로 시간적 순서와 논리적 순서였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먼저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고 하신 그 말씀, 나도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의 삶에서 진정한 순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때도 자신의 제한된 생각과 제한된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려 애쓴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더이상 머리에서뿐 아니라, 말로도 설명할 수 있다는 내 안에 기쁨이 있었다. 내 안에 새로운 링크가 업데이트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두 가지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들었던 질문은 내 인생 질문이 될 것 같다.
우선 내 질문을 말하기 전 목사님이 해주신 말부터 써보겠다. 예수님은 사역의 모든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셨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상황을 피하셔서 모두가 분주하고 바쁠 때 기도하러 가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내 부족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 나 또한 얼라이브에 부 리더로서 목요모임 인도할 차례를 맡을 때는 마음이 많이 분주해진다. 그리고 긴장도 된다. 그러나 시간과 나의 마음에 상관없이 기도가 우선이라는 것을 주님은 나에게 일찍부터 알려주셨다. 그래서 저녁 밥을 먹자마자 기도실로 뛰어간다. 그러나 그 기도의 자리에서 여유롭게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았을 때 내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이유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삶에서 주님과의 관계가 언제나 가깝지 못했던 것이었다. 반면에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고 게셨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짐을 했다. 다시 일찍 일어나 주님과 교제하기로 말이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기도 습관을 가지셨다는 것을 듣고 오히려 이것에 있어서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하는 나를 보게 하셨다. 그러나 막상 나의 일상을 되집어 보니 나는 시간 있을 때만 하고 그러지 않을 때면 기도를 뒤로 미루다 하지 못할 때가 참 많았었다. 그런데도 자부심을 갖고 싶어한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내가 성경 말씀을 얼마나 모른다는 것도 알게 하셨다.
다음으로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사실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재촉하시고 그 이후 자신은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이미지가 깨지는 것 같았다. 항상 마음이 여유로우시며 재촉하지 않으시고 무엇이든 잘 대처하실 것 같은 예수님의 이미지와 달리 오늘 마태복음 14장 22절 말씀의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재촉하셨다. 그러나 새롭게 얻게 된 한 가지, 예수님은 기도 만큼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절대 놓치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치나 이상한 시선을 보지 않으시고 기도하기에만 집중하셨다. 그냥 갑자기 얼라이브 경배와 찬양이 생각났다. 경배와 찬양 끝난 이후 같이 모여 기도하지 못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끝난 이후에도 마음 놓지 말고 기도해야 겠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쓸 것은 ‘제자 심은 데서 제자가 난다’라는 이 말에 핵심 포인트였다.
바로 ‘예수님이면 충만한 자’였다. 예수님으로 충분한 그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나도 더욱 경험하기를 원하기에 갈망하는 삶이었다. 나는 이 삶을 나는 죽고 주님이 사시는 삶이라고 결론 짓고 그렇게 기도해왔다.
내 방학 약속의 말씀 또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 만큼 나는 이 삶을 간절히 원했다. 이로 인해 최근에 내 안에 드는 질문이 있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내 삶에서 이 질문에 계속 부딪쳤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닮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으나 무엇보다 나의 삶에서 내가 살려 하는 믿음의 삶과 사람의 말이 하는 믿음의 삶이 달랐기에 너무나 혼란이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7월 16일부터 7월 21일까지 할머니 집에 있는다.
여기서 잠시 우리 할머니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우리 할머니는 신앙이 깊고 다른 웬만한 교회 성도들처럼 그냥 어지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분이 아니시다. 할머니는 매일 보혈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시고,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거의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 눈물로 기도하시며, 또 말씀 전해주실 때도 항상 우리가 하나님 더 사랑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시다. 그 만큼 예수님을 깊이 만나신 분이다. 이런 우리 할머니는 우리에게 항상 예의를 강조하신다. 그리고 삶에서의 정리를 그렇게 강조하셨다.
사실 나도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할머니가 하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고있다. 그리고 이 예의와 주변 정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것과 동시에 선한 영향력을 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좋으라고 그러는 것은 알지만, 때론 할머니께서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때 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예수님도 그러셨을까?’였다. 난 할머니의 신앙이 거짓이 아님을 옆에서 봐왔다. 그래서 이러한 나의 어려움 때문에 할머니의 말씀을 당연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다 순종하기는 나에게 너무 벅찼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너무나 궁금했다. ‘예수님이라면 정말 이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은 나에게 정말 절박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은데 할머니의 말을 듣지 못해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한 것 같은 찔림이 정말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잡고 원래 나의 본문이 아닌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생활이 나와있는 사복음서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학교에서 많이 들었기는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생명이다...등등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내 안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드라마바이블을 틀어 이어폰을 끼고 마태복음을 들었다. 내 심령은 너무나 갈급했다.
예수님 자신을 나에게 계시해 달라고 나는 간절히 구했다. 그래서 몇 분은 밑줄도 긋고 필기도 하며 열심히 했다. 그런데 늦은 저녁이라 잠이 쏟아졌다. 잠을 깨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자, 마태복음 이제 3분의 1 왔는데 어쩔 수 없이 노트북도 닫고, 성경도 닫았다.
그러나 이 시간을 통해서 나는 내 삶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예수님에 대해 알게 하신 것은 단 하나였다.
내가 발견한 예수님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성격의 소유자 이시라는 것이었다. 주님이 내 수준에 맞게 그리고 명확하게 내 안에 알게 하셨다. 이 일이 있은 후, 다음 날 선데이 클럽, 줌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에 대해서 나는 진지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그 삶이 무엇이기에 나는 아직도 상황과 주변 사람에게 매이며 살아가는가?
목사님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내 인생 질문을 던져 주셨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자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이었다.
줌을 끄고 나서 나는 기도했다. 예수님으로 충분한 그 삶 나도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수님은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는 나의 생각을 바꾸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말씀에 마음 다해 반응할 수 있었다. 이 일 있은 후, 난 목사님이 나에게 해주신 답변을 몸소 겪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에게 있었던 일은 여기까지 쓰도록 하겠다.
이번 첫 줌 미팅을 통해 들었던 생각을 정리하여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이 첫 줌 미팅은 나에게 정말 기다려졌던 미팅이었다. 어찌 보면 제2의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임은 헤브론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오신 ‘송준기’ 목사님은 우리의 특별한 리더이셨다. 그리고 송준기 목사님의 책을 읽은 나는 송준기 목사님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너무 놀랍다고 생각 되어졌다.
그래서 줌 미팅할 때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 최대한 집중하며 필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우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는 지도 심도있게 들었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면서 졸리기도 하고, 눈도 뻑뻑해져 눈도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이기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에 고민하며 동생에게 채팅으로 나누기도 했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 다른 지체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기도 때문이다.)
송준기 목사님께서 기도로 준비하신 이 줌 모임 시간은 마치 무엇인가 나뿐만 아니라, 이 모임 자체를 주도하듯 했다. 그리고 목사님이 답변해주시는 것을 들으면서 목사님은 답변해주시는 것이 지금 내가 듣고 싶어하는 답변보다는 더 중요한 그 근본과 근원을 집어주시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이 참 좋았다. 다음 시간도 기대된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지체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질문, 코멘트를 자유롭게 편안하게 나눠주기를 원하기에 나 또한 이 모임을 기도로 준비할 것을 결단하게 되었다.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의 질문들이 수 없이 생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질문을 해결해주실 분이 계시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이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의 나의 질문과 문제에 있어서 사람에게 물어보기 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더욱 답을 찾아가고 싶다. 많은 시간과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주님이 하게 하시리라 믿는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 이 삶을 내 삶에서 계속 기도하며 이로 인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삶에서 실천하기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다.
이 첫 모임에서 들었던 내용 하나하나를 내 삶에서 실천해보며 내 삶에서 적용해보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실 주님만을 기대한다.
‘이제는 내가 없고 오직 예수님만 내 안에 살아계신 오직 예수님만
찬양하며 살리라 예배하며 살리라 내 안에 계시는 오직 예수님만...’
'루틴 > 헤브론원형학교&성경통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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