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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처치 설교및 강의/웨이설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아는가? (10-12월 씨리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1. 문제제시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함께 믿었던 사람들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행 17:6)이었고,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히 11:38)이었는데, 

우리는 왜 안그럴까?

 

우리는 "천하를 어지럽게" 하기는 커녕,

눌려 신음하며 사는 것 같고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존재이기보다, 

세상을 사모하는 존재로 사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영향을 받으며 사는 듯하다. 

 

또,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남녀노소/유무상통의 공동체였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안될까? 

예) 공동체 생활 가능?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고, 보여주셨고, 실행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땅인데... 이들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우리 가운데 있을까?

 

스스로를 "부활의 증인"이라고 불렀던 사도행전의 성도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갔을까?

"증인" = "마르투스" = "목숨을 걸고 증언하는 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숨을 걸고 증언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교회"는 왜 능력이 이정도 밖에 없을까?

......

그래서 리서치...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없어서라고 대답하고 있더라. 

 

"기독교는 결국 예수다! 예수, 생명의 밥이신 예수를 제대로 붙들 때,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 (김형국)

 

"한국교회는 안팎으로 도전과 위협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위기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이곳저곳 무너진 영역마다 쓰디쓴 실패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어두운 전망치가 가뜩이나 처진 어깨를 짓누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상황이 기울고 불안한 때면 이단이 득세하고, 이 이론 저 방법이 등장해서 더 혼란스럽게 하며 현상에 급급한 임시 처방이 성행합니다. 내부 분열이더하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이때야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볼때입니다. 

야곱에게는 벧엘이 있고 탕자에게는 아버지 집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영원불변의 진리, 백문일답인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김용의)

 

위와 같은 목양적 근심을 가지고

아래와 같은 씨리즈를

구성해보게 되었다.

 

2. 씨리즈 목차 

Part1.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가? 

week1. 정의: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 복음을 들었는가? (고전2:1~5) (10/15) 

week2. 진정성: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 복음을 아는가? (갈1:6) (10/22)

 

Part2. 우리는 예수님만으로 충분한가?

week3. 온전함1: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 복음으로 가득한가? (롬8:32, 히12:2) (10/29)

week4. 온전함2: 우리는 예수님만으로 부족함이 없는가? (눅18:18-27) (11/5) 

week5. 온전함3: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가? (롬 14:8) (11/12) 

week6. 온전함4: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요일 2:15, 16) (11/19) - 추수감사주일

 

Part3.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했는가? 

week7. 회심1: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11/26) 

week8. 회심2: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요 6:26-68) (12/3)

week9. 회심3: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의 가치는 우리 각자에게 얼마인가? (엡 3:19) (12/10)

 

Part4.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week10. 성화1: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을 닮았는가? (약4:8) (12/17)

week11. 성화2: 우리의 열매들이 예수님을 닮았는가? (눅 6:44)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