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웨이처치 설교및 강의/외부설교

[살리는 기도] 강의안.

  살리는 기도 Part1. 문제제기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미7:7)

 

 

1. 죽음의 문제  

(1) 모든 고통은 죽음의 그림자다.

예) 연애/ 직장/ 외모/ 건강 - 최악의 상황은 다 죽음

 

(2) 죽음은 죄 때문에 왔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3) 죽음은 필연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2. 죽음을 이기는 생명력 

(1)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믿을 때 얻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2) 예수님의 생명이 내 죽음에 대한 속량(가격)으로 지불되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5:6-10)

 

(3) 예수생명력이 있을 때, 내 죽음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죽음문제도 해결해주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2:14)

 

(4) 나도 살고 남도 살리려면 기도해야 한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9:28-29)

 

 

 

 

  살리는 기도 Part2.  히스기야, 모세, 예수님 이야기  

3. 살리는 기도자의 3가지 특징. 

(1) 히스기야의 살리는 기도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20:2, 3

①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다.

②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기도했다. 

③ 심히 통곡했다. 

 

(2) 모세의 살리는 기도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출32:11-14)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32:31, 32)

①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출32:11. 
②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기도했다. 
③ 살려주지 않으시면 차라리 자신이 죽겠다고 했다 (32절)

 

※ 히스기야와 모세의 살리는 기도 공통점 - 죽음 앞에서 기도했다. 

(1) 죽음을 남보다 앞서 인식한다. 
(2) 이미 하나님과 남다른 기도의 관계가 쌓여있었다. 
(3)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전적으로 기도했다. 

 

(3) 예수님의 살리는 기도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

 

 

 

  살리는 기도 Part3.  예수님 처럼 기도하는가?  

4. 예수님의 기도 모범  

(1) 기도는 사역의 우선순위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5-16)

(2) 바쁠수록 한적한 시간과 새벽시간을 만들어서 더욱 기도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막1:35-37)

(3)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도 습관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눅22:39-40)

(4) 기도의 기회를 부자연스럽게 억지로라도 만드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14:13, 22-23)

(5) 기도를 중심으로 제자화를 시작~종료 하셨고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6:12-13)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막14:32-42)

(6) 그분은 제자화를 위해 밤샘기도와 새벽기도와 금식기도를 하셨다 (마4장, 막1장, 14장...).

 

 

5. 예수님 처럼 기도하지 않는 이유. 


그러나 예수님 따른다는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따르지 않는다. 왜냐면...
(1) 바쁘기 때문에... 
바쁘다고 식사 안한적 없고, 
바쁜데 교회 프로그램/행사 진행하고, 
바쁜데 설교도 꾸준히 한다.
결국, 바쁘다는것은 
"나는 기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늘 있다"라는 뜻이다.

(2) 그분의 거룩을 더욱 닮아가는 것이 본성적으로 싫기 때문에...
"기도는 거룩한 일이라서 죄인인 나는 늘 기도 하기를 싫어한다" (EM 바운즈 목사). 
기도하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고 
그러면 회개해야 하는데, 
죄성 짙은 자아는 그것을 늘 싫어한다.

(3)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기도하면 하나님과 친밀해지는데,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말씀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의 거짓된 자아는 그것을 늘 싫어한다.

(4)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기도할 때 마다 가장 많이 방해 받는것이 있다면 
“기도 할 시간에 책 한권 더 읽고, 성도 한 사람 더 만나고, 
칼럼이라도 하나 더 써야지!”라는 것이다. 
결국, 목회자 자신이 뭔가 직접 하고 싶지, 
많은 경우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고 의지하기를 싫어한다.

(5) 기도하면 살리는 능력의 통로로 쓰임받는데 그 결과가 싫기 때문에...
기도하면 하나님 의지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된다. 
그러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높임 받으신다. 
교만한 자아는 그것을 늘 싫어한다.

(6) 기도하면 남의 자리를 만들어주게 되는데 그것이 싫기 때문에...
기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전염되고, 
그러면 명예의 전당(?)에 자기 이름이 아니라 
목회자가 섬기는 성도들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게 된다. 전적으로 위임해야 한다. 
이기적인 자아는 그것을 늘 싫어한다.

 

  살리는 기도 Part4.  예수님 처럼 기도하자!  

6. 결론과 도전 


야고보서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누가복음 12: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마태복음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살리는 기도 Part5.  죽음을 무시하면 큰일 

 

7. 죽음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의 위험성

(1)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죽음을 잊으면 생명의 가치도 함께 희미해진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2) 목적이 불분명한 삶을 산다. 

(3) 문제가 나타나면 쉽게 흔들린다. 
“겁쟁이는 죽음에 앞서 몇 번이고 죽지만 용감한 사람은 한 번밖에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세익스피어.

죽음을 알고 존재의 의미를 숙고한 사람은 인생의 온갖 문제 앞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미리 생각해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을 망각한 인생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치면 그때 마다 방향 없는 불안을 느끼며 실수를 해댄다. 

(4) 영원을 지향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19. 

(5)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이 사라진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사람을 현재에 집중하게 만든다. 주변을 둘러보라.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 일에 휩싸여 산다. 도시는 사람들로 붐비고 가는 곳마다 할 일이 넘친다. 누구든 그렇다.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여행객이든 휴식중이든, 한가한 사람이 없다. 
세상은 사물 인터넷으로 날로 더 가까워지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등장은 먹고 사는 일에서까지 개인화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 시대 어디를 둘러봐도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것만 같다.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조차 자신의 삶을 위한 가십 쯤으로 쉽게 다룬다.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는 신종바이러스로 몇명이 죽든, 그들의 생명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단지 내가 이 위기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상기시켜주는 가십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가 매 5초마다 1명꼴로 굶어 죽어가는 현실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식으로 낙태, 토양 오염, 물과 식량부족, 미성년자 성착취, 미혼모, 전쟁, 기아, 고아……등의 문제들 모두 살아가는 나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들로 전락한다. 
각 개인에게는 그저 활발히 움직이는 세상이다. 남의 죽음만큼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역시 거의 거짓에 가깝게 느껴지는 환경이다. 
또 다른 편에서 세상의 삶은 너무 산만하다. 이때문에 개인의 현실에도 충분히 집중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명에 깊이 몰입하기가 힘들다.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으니 이 부분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플레너리 오코너 Flannery O’Connor라는 작가가 있었다. 그녀는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하나다. 그녀는 1949년부터 작가 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문학사에 획을 그은 대부분의 작품들은 1952년 이후에 쏟아냈다. 그녀가 전신 홍반성 루프스 질병(S.L.E)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예견된 죽음이 그녀를 소명에 집중케 했다.  
그녀에게는 매일 몰아치는 고통이 있었다. SLE와 그 합병증으로 그녀는 10년 넘게 매 순간 몸부림쳤다. 이보다 더 죽음이 가까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했다. 여기서 생명력이 터졌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배우고 또 배웠다. 그래서 글을 써댔다. 소명을 이루는 것 외의 다른 소란들은 모두 매일 조금씩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앞에 잠잠했다. 
죽음을 부정하는 환경은 현실을 부정한다. 전세계적인 공통의 문제들도, 개인적인 인생 방향성을 매 순간 실천하는 것도 방해한다. 

(6) 공동체를 부정한다.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로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 이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어떤 믿음보다 우선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죽음이 없는 것 처럼 살면 삶을 맹신하게 된다. 계속 살아있을 것처럼 살다보면 삶 자체를 믿게 된다. 자기 자신의 호흡, 경험, 이력, 능력, 잠재력등이 세상을 다 초월할 것이라는 성공문학의 속삭임은 이를 겨냥한다. 모든 활동을 자신에게 맞춘다. 현재의 생명을 스스로 풍성히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으로 하루를 가득 채운다. 그러다 보면 두가지 문제가 시작된다. 하나는 내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인 것이다. 
내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인다. 흔히 말하는 “중2병”에 걸린다. 다른 말로는 교만해진다. 이런 사람은 파멸의 길로 들어간다. 교만한 자는 실패하든 성공하든 끝난다. 잘되면 스스로를 신처럼 대하고, 잘못되면 깊은 회의감에 빠져 자기 파괴적 감정과 행위를 나타내게 된다. 
또한 외적으로는 사회적 고립의 길로 간다. 이미 교만하던 자도 죽음 앞에 서면 겸허해진다. 주변을 둘러보며 우선순위가 뒤집힌다. 특히 인간관계를 모두 되돌아본다. 하지만 죽음이 없는 것 처럼 살아 교만해지면, 성공하든 망하든,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다. 스스로를 무한히 높여도 홀로 되고, 낮춰도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는 불가능해진다. 
자괴감, 부러움, 자존심 상함 등은 모두 교만에 뿌리를 둔다. 교만이 실패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감정들이다. 반면에 성공한 자나 아닌자나 누구든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동질감이 있다. 개인에게 뿐 아니라 사회 관계의 연결망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죽음 만큼이나 모두가 공평하게 공유하는 운명이 또 있을까?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인식만 있어도 전 인류가 공동 운명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