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웨이처치 설교및 강의/외부설교

데이트학교 강의안1: "나는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728x90

(그림: 말씀 전달자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며 하와를 지키는 아담)

(강의안 핸드아웃을 만드실 경우, 아래 내용을 참고 하셔서 상황에 맞게 준비해 주세요. 밑줄 그은 부분은 빈칸으로 넣으셔도 좋습니다)

 

1. 도입

(1) 내 이상형의 출처는 성경인가 자기 경험인가?

예) 술 안먹는 남자

 

(2) 취향의 출처는 성경인가 자기 느낌인가? 

예) 욕조에 담갔더니... 

 

2. 성경적 이상형: 나는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본문 - 창2:15~25

 

“내가 결혼해야 하는 배우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성경(창세기 2장 본문)을 향해 던져보라. 
그러면...... 

1. 사명 이 있는 남자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2:15)

 

사명이 있는 남자의 3가지 특징 

(1) 경작하는 남자

세상과 아내 사이에서 세상을 경작하며 지키는 남자가 당신의 이상형이 되게 하라.

자매에게 뿐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상형을 갖는다는 것은 그에 걸맞도록 자기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형제들이여, “사명이 있는 남자”에 걸맞는 사람이 먼저 되라. 
자매들이여, 주님의 이름으로 “사명이 있는 남자”를 유혹하라.

동시에 세상을 하나님의 땅으로 경작 하려는 남자가 되도록 돕는 여자가 되라.

(2) 지키는 남자

에덴동산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세상이 되도록 보호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를 위반하는 모든 세력으로 부터 동산을 보호할 임무가 있었음을 기억하라 (창 2:16, 17)

말씀에 위반되는 철학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쫓아내는 남자를 당신의 이상형으로 품어라. 

하나님의 통치가 지속되도록 여자와 세상을 말씀으로 지키는 남자가 되라. 

진리 기준에 집중시켜 하나님의 통치를 보호해 내는 남자가 되도록 돕는 여자가 되라.

(3) 부지런한 남자

자기가 뭘해야 하는지 모르는 남자는 게으르다.

이것은 단순히 구직이나 바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근원적인 문제다.

누군가 직업 선택을 고민하며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면 그는 게으른 사람이다.

또는 어떤 일이든 바쁘게 진행하면서도 정작 소명 바깥에서 행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게으름이다. 
사명이 없는 곳에서의 열심은 부지런함으로 볼 수 없다. 

예) 농부의 예 (잠 20:4)

사명이 있는 남자”가 형제들이 되어야 할 모습이라면, 

자매들은 돕는 배필의 사명이 있음을 기억하라 (창 2:18). 

예) 십보라 (출 4:23-26)

 


2. __말씀__을 전해주는 남자 (창2:16, 17)

만약, 아담이 하와에게 선악과 금지 말씀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그러면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 기준이 없었겠지?

그랬다면, 하와는 죽음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았겠지?

그랬다면, 그 “보암직도 먹음직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창 3:6) 열매를 진작 따먹고 먼저 죽었겠지?

게다가 하와는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전혀 모른채 억울히 죽어갔겠지?

그렇다면, 그 책임 소제는?

당연히 말씀을 먼저 받았던, 그러나 전하지는 않았던 아담 오빠에게 있었겠지?

선악과 앞에 서서 그것이 죽음의 열매인지 아는 지식이 없다면 하와는 쉽게 먹고 죽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에덴동산을 “지키는” 아담의 임무는 하와에게 “말씀을 전하는” 임무와 연결된다.

 

- 에덴동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선악과 금지 명령이었다. 
- 누구든 동산에서 그 말씀을 어기게 되면, 그 말씀대로 죽는다. 이것은 법이었다. 
- 법을 아는 지식이 아담에게 선재했고 당연히 그 법을 전했다. 그러니 아담은 법의 전달자이다.
- 하나님의 법 준행자가 받았던 임무중 하나가 바로 “지키는 것”이었다. 
- 도덕적 통치와 지키는 행위와 연결된다. 아담에게 직책이 있다면 “법의 수호자”다. 
- 법에 의한 도덕통치가 있는 사람과 장소 그리고 그 실행자가 있는 장소는 곧 “나라”를 의미한다. 
-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통치이며, 하나님의 사람에 의한 법 수호이니,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 무리가 없다.



말씀 전달자로 사는 남자의 세가지 특징


(1) 그는 적대적이다. 
“지킨다”를 사용해서 문장을 뭐든 만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군인이 나라를 지킨다. 복싱 챔피언이 자신의 타이틀을 지킨다. 어미새가 아기새들이 있는 둥지를 지킨다......”
지키는 행위는 적대적이다. 군인은 적군과 싸운다. 복싱 챔피언은 상대방을 때린다. 어미새는 침입자를 공격한다.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보호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말씀을 파괴하려는 모든 존재를 향해 공격적이다. 그에게는 의분이 있다. 진리를 파괴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들앞에서 그는 진지한 싸움꾼이다.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거스르는 모든 실행적 구조들에 대해 그는 공격적 파괴자이다. 

(2)그는 겸손하다. 
아담의 “지키는”임무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에게 있는 적대성의 무기는 말씀이다. 그는 이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다만 창조주로 부터 전해 받았다. 군인이 국가와 경쟁하지 않듯, 챔피언이 경기장 바깥에서 싸우지 않듯, 말씀 전달자 역시 법을 각색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자의로 싸우지 못하는 2인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죽고 사는 영적 전사다. 그는 겸손하다. 

(3) 그는 회개한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도둑이 있다면 누가 그의 이야기를 듣겠는가? 말씀을 전달하기 앞서 본인에게 먼저 적용해야 사명 수행이 가능하다. 아담은 먼저 들었던 말씀을 본인이 지켜야 했다. 그래야 전할 수 있었다. 이것을 우리에게 가져오자면, 회개하기이다. 참된 전달자는 먼저 말씀 앞에 무릎 꿇는다. 회개에 부지런하다. 

 


3. 결핍이 있는 남자 (2:18)
처음엔 “돕는 배필”이 없었다. 

돕는 배필 창조 전의 아담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한"남자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적 이상형의 세번째 모습을 보여준다. 
결핍이 있는 남자다. 

스스로 완전하지 않은 남자다.

언제든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내를 필요로 하는 남자다.

홀로 있을때 가장 행복한 남자는 성경적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남자 역시 그렇다. 
형제들이여,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남자가 되라. 

여자 앞에서 자신의 단점들이 드러나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 남자가 되라. 

그 대신, “그래서 나는 당신이 필요하지!” 라는 겸손한 선언을 하는 남자가 되라. 

자매들이여, “완벽한 남자”를 피하라. 그들은 당신의 이상형이 아니다.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채우려 애쓰는 남자들로부터 도망가라. 오히려 성경적 이상형에 집중하라. 자신의 약점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에 도움을 받으려는 태도를 가진 남자를 찾아보라. 
한편, 그런 남자가 되도록 돕는 여자가 되라. 왕자병의 치유자가 되라. 자존감이라는 맹수의 조련사調鍊師가 되라. 


5.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 (2:19-22)
성경적 이상형의 네번째 모습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남자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결핍이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그 빈 자리를 채우는 최선의 배우자를 부족한 남자에게 이끌어오셨다. 그리고 둘이 한 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결핍과 배우자 인도하심 사이에 동물 이름짓기 업무가 있다 (19, 20). 

이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일이었다. 

첫째는 결혼의 일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과정이었고, 둘째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물론 아담은 둘 다 완수했다. 
여기에 성경적 이상형의 네번째 모습이 있다. 

그는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이다. 
예) 보아스 (룻 3:3-18). 
형제들이여, 멀리 내다보라. 결혼의 일을 이루라. 
자매들이여, 시험해보라.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인지 찾아보라. 

동시에, 자신의 남편깜이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가 되도록 도우라. 


5. 뜨거운 노래가 있는 남자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3)

만약 아담이 눈을 떴을 때 옆에 있는 하와를 보며 “엇? 누구세요?” 라고 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아담은 하와를 알아봤다.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뼈 중의 뼈, 살중의 살”이라고 불렀다.

아담에게는 자신의 짝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자매여, 자기 몸의 반쪽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가진 남자가 당신의 이상형이다.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아담조차도 자신의 결핍에 대한 인지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렇다면, 죄가 가득해진 오늘날 그대는 아담보다 못할 것이 뻔하다. 
즉흥적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알아보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그 프로세스는 아담을 따른다. 

1단계. 하나님과 동행하기.

2단계. 자신의 결핍을 인지하기.

3단계. 잠들기

 


6. 는 남자 (2:21-25)

예) 꿈꾸는 소년 요셉, 잘생긴 히브리 노예 청년 요셉. 
요셉은 꿈꾸는 남자였다. 다시말해 자고 있던 사람이었다. 비슷한 그림이 아담에게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돕는 배필을 직접 빚으시는 동안 그가 했던 일 역시 잠이었다. 그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잠들게 하셨으니 자면 되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이유는 아마도 외과 수술이 1차적 이유였던 것 같다. 그의 갈빗대 하나를 가져다가 하와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2:22). 
외과 수술을 위한 마취에서 환자가 깨면 큰일이다. 아마 쇼크사 할지도 모른다. 아담은 배우자가 완성되는 동안 깊이 잠들어 있어야만 한다. 중간에 벌떡 깨어 일어나면 절대 안된다. 아마 놀라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담의 깊은 잠에는 2차적 이유도 짐작된다. 그것은 다음 구절에 등장하는 “뼈 중의 뼈, 살중의 살” 노래와 “둘이 한 몸”의 맥락에서 파악 가능하다 (2:23, 24). 외과 수술을 마치고 그를 깨운 것은 맥락상 그의 아내였고, 그녀를 인도하신 하나님이셨다.
아담은 한마디로, 결혼관계에서 하나님과 아내가 깨울때 까지 잠들어있는 남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이상형의 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형제들이여, 미래의 아내가 당신을 깨울때 까지 잠들어있어라. 포르노그라피를 거절하고 결혼을 꿈꿔라. 아내가 깨운적 없는 성욕은 결혼 메뉴얼에 없다. 누군가 다른 존재가 당신의 성욕을 이미 깨워버렸다면 회개하라. 새롭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라. 이미 깨어나버린 남성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부활하라. 
지속적인 유혹과 죄의 결과들은 남자답게 “자기 십자가”로 짊어져라. 그리고 무겁더라도 주를 따라가라. 결핍을 인지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아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눈을 가지기 위해 훈련하라. 다시 잠들어라. 
자매들이여, 이미 깨어나버린 남성을 가진 형제를 주의하라. 당신이 아내가 된 이후 조심스럽게 깨워내야 하는 성을 이미 잃어버린 남자는 성경적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스펙이 있고 식스펙이 있더라도, 그런 형제는 멀리하라. 
동시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고삐풀려버린 성욕을 지니고 있는 죄인들을 도와주라. 당신의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이끄는대로 함께 간음하지 말라. 오히려 지혜롭게 그가 순결을 회복하도록 도와 주라. 함께 회개하라. 그러나 거칠게 다루면 역효과가 생기는 것도 주의하라. 다시 재우려면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 사랑의 자장가를 불러주며, 따뜻하게 품어 쓰다듬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