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가 나의 이상형인가? (창세기 2:15-25)
1. 도입: 그녀의 이상형
한권사님이 24살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녀에게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 이상형이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남자였다.
왜 그녀는 그런 이상형을 갖게 되었을까?
이유는 그녀의 경험에 있었다.
그녀의 오빠들과 그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그녀의 오빠들은 모두 알콜 중독자였다.
그녀는 어린시절에 오빠들에게 많이 두들겨 맞았다.
그 부정적 경험으로부터 그녀는 한가지 이상형이 생겼다.
술 안먹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이 그녀에게 탄생했다.
그녀의 결혼 기도제목이 무엇이었을것 같은가?
맞다. 술 안먹는 남자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그녀는 기도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맞다.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주셨다.
그녀의 남편은 정말 술을 전혀 못마시는 분이셨다.
문제는 그가 술 말고 다른 것들을 다 하시는 분이셨다는 데 있었다.
그는 술만 안드셨지 도박과 외도를 하셨다.
그 권사님의 처녀시절 이상형 기도제목의 문제가 뭐였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 그녀의 이상형에는 문제가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단지 성경을 토대로 기도했다면 어땠을까?
그저 성경에 기록된 형제 이상형을 달라고 기도했다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자신의 경험을 내려놓고, 성경에 등장하는 이상적 남성을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그녀와 같은 잘못을 우리도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경보다 경험을 따르는 죄성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결혼 기도를 하고 있는가?
만약 결혼 기도를 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각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성경 말씀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이시간 창세기 2장 15절에서 25절까지 함께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결혼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먼저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매들이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왜냐면, 오늘 본문에서 이상적 남자가 누구인지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본 후, 자매들은 성경이 말하는 이상적 남자를 달라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형제들은 말씀을 듣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형제들은, 오늘 성경 본문이 보여주는 이상적 남성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본문 읽기
일단, 창세기 2장 15절부터 25절까지 함께 읽어보자.
15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
16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17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of it you will surely die."
18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19 Now the LORD God had formed out of the grou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s of the air.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20 So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livestock, the birds of the air a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But for Adam no suitable helper was found.
21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22 Then the LORD God made a woman from the rib he had taken out of the man, and he brought her to the man.
23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24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25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they felt no shame.
3. 결혼을 만드신 하나님
어떤 예술품을 잘 이해하려면 그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작품마다 그 예술가의 인격과 정신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결혼도 그렇다. 그 창조자의 속성이 반영되어있다. 결혼을 이해하려면 그 원 디자이너가 누구신지 살펴봐야 한다.
각 구절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결혼을 만드신 하나님의 5가지 속성이 드러난다.
(1) 결핍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2:18).
v.18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하나님은 남자를 “돕는 배필”이 부족한 존재로 지으셨다. 결혼 디자인은 여기서 시작된다: 배우자의 결핍이 있는 남자.
어떤이는 이를 오류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앞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에 대해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핍”이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할 법 하다.
하지만, 결핍의 기능을 좀 더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먼저, 결핍 그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기능이 있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고, 아픔이 없다면 치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배우자 결핍이 있는 존재로 지으신 분이시다. 디자인 이유가 주님께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남성의 존재가 결혼관계를 향하도록 만드셨다.
또한, 결핍 그 자체는 죄도 아니다. 예컨데, 가난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가난을 도둑질의 동기로 사용한다면 그때는 죄가 된다. 배우자 결핍도 마찬가지다. 결혼할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결핍을 어떤 죄의 동기로 사용한다면 죄가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결혼을 향한 결핍을 주셨지만, 그것을 가지고 죄를 저지르는 것도 허용하셨다.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배우자 결핍의 의도는 결혼에 집중하는 것이다.
결핍이 결혼의 동기로 작용하는것, 이것이 정도(正道)이다.
결핍을 결혼에서 벗어나는 동기로 사용하면, 그것은 악한 결핍이 된다. 그것은 죄이다.
청년들은 가끔 이런 소리를 한다. “나는 진즉에 연애 세포가 죽었어. 지난 관계에 상처받고 몇년째 혼자 지내다보니, 이대로도 좋더라구.”
이것은 결핍이 없는 상태다.
문둥병이 자신의 상처를 인지하지 못하듯,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배우자가 결핍된 존재로 사람을 지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죽은 연애세포가 있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살려내라.
죄의 동기라는 카테고리에 결핍을 넣어두지 말라. 선하게 써라.
욕구가 있다면 숨어 죄짓지 말고 디자이너의 의도를 발견하라.
결핍의 에너지를 죄 짓는데 쓰지 말고, 하나님과 배우자를 찾는 데 써라.
형제들이여, "아내를 보내주소서!" 라고 부르짖어라.
자매들이여, "남편에게로 인도하소서!" 라고 부르짖으라.
(2) 결핍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창 2:19-20)
Now the LORD God had formed out of the grou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s of the air.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So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livestock, the birds of the air a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But for Adam no suitable helper was found.
(창세기 2:19-20)
6일 천지창조사역의 끝에 아담이 있었다.
창조주는 아담이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이끄셨다.
하나님이 아담에게로 동물들을 이끌어 이름짓게 하셨다.
이 과정은 아담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모든 동물들은 다 무리가 있고 짝이 있는데, 자신은 혼자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최초의 남자는 자신의 결핍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순수한 인생이었다.
물론 아담은 완벽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그에게 주어진 결핍도 보기 좋았다. 그 결핍은 결혼을 향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선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인생을 경험하며 성장해가는 존재로 지어졌다.
그래서 이제 자신의 결핍을 인생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인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동물들 이름짓기는 자신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훌륭한 과정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다 아담의 후예들이다. 스스로 결핍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외로움의 자리로 간다.
그러니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배우자 결핍을 감사하라.
결핍은 고난이고, 외로움은 고달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로마서 5장 3절 말씀처럼, 고통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롬 5:3-4).
결핍을 깨닫게 될 때 마다 결혼을 향한 소망을 키워가라.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셨던 본래의 결혼을 꿈꾸며 소망하라.
그 과정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다 (약 1:4).
(3) 배우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창 2:21-22)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Then the LORD God made a woman from the rib he had taken out of the man, and he brought her to the man.
(창세기 2:21-22)
이름짓기 과제가 끝나자,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리고 하와를 만들어주셨다.
아담이 눈을 떴을때 그 자리에는 배우자가 있었다. 이것은 잠자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22절을 보라. 그녀를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셨다.”
결핍을 만드시고, 그것을 깨닫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최선의 배우자를 인도해오셨다.
거기서 혼자있는 아담이 했던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쉬운 일은 바로 잠자기였다.
성경에는 몇몇 잠의 대가들이 등장한다.
시편 저자는 잠을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했고 (시 127:2),
요셉들은 자는 동안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창 37:6-9, 마 1:20).
그들 중에서도 베드로는 더욱 탁월했다. 사도행전 12장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야고보 사도가 순교한 직후였다. 이번에는 베드로가 잡혀갔다. 감옥에 갖힌 베드로, 그는 내일 사형을 당할 예정인데도, 오늘 잔다 (행 12:6). 잘 잔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던지 천사가 와서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했다 (행 12:7).
베드로는 누구였던가? 그는 성령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어린 아이 하나 앞에서도 무서워 벌벌 떨던 베드로였지 않은가.
같은 사람이 위기의 순간임에도 깊이 잠들어있는 것을 보라.
그 평안의 출처가 무엇인가?
성령님의 동행이 있는 사람에게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잘 잤다.
성령임재는 하나님 은혜의 끝판왕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다.
베드로의 잠을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믿음"이 함께 만들어내는 행위임을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잠시 곁길로 샜다.
다시, 아담의 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아담의 결핍은 어떻게 채워졌나? 그의 결핍이 채워졌던 하나님의 방법은 잠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자리, 하나님을 향한 아담의 믿음이 작용했던 자리, 그 자리에 깊은 잠이 있었다.
잠자기는 쉽다.
자는 동안 그가 했던 일은 고작해야 “꿈꾸기” 혹은 “가만히 있기” 정도였을 것이다.
이 잠 스토리를 우리에게 가져오자면, 배우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꿈꾸기와 가만히 있기에 대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꿈꾸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거룩한 결혼을 꿈꾸라.
자신이 경험했던 어떤 결혼생활들, 예를 들자면, 부모님의 결혼, 친척 어른들의 결혼, 혹은 이혼커플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말라.
그 부정적 경험들 앞으로 자신의 대안을 가져다 대지 말라. 그 대신 단순히 성경을 보라. 거기서 이야기하는 결혼 본래의 모습을 꿈꾸라.
예를 들어, “내 아빠가 술 많이 드셔서 집안 어려워 졌다. 그래서 나는 술 안먹는 남자를 찾고 있다”는, 그런 식의 “대안”을 버려라.
그 대신 “성경이 말하는 남자는 누구인가?”를 살펴봐라.
다시 말한다. 대안 말고 진리를 꿈꾸라.
예수님을 붙들고 새로워진 인생이니 한번도 실패한적 없었던 사람처럼 자기 경험에서 탈출하라.
결혼 메뉴얼인 성경 진리를 붙들고 거기 기록된 결혼생활을 꿈꿔라.
또한 “가만히 있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꿈꾸며 할 중요한 일은 가만히 있기다. 가만히 있으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을 사용하라.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 주님이 가까운 곳에서 내 배우자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 결혼을 만드신 분이 또한 실행하실 것이 데한 믿음!
어린 아이를 대하는 사랑의 아빠를 생각해보라.
나도 아빠다. 내 딸이 3살때, 스스로 물을 찾아 먹을 수 있도록 그녀 가까운 곳에 물병을 가져다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물을 찾을 때 스스로 마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던 것도 생각난다.
아빠 하나님의 사랑도 자식들을 향한다.
가장 필요한 배우자를 어디 남극 기지나 브라질의 밀림 한가운데 꼭꼭 숨겨두고 “찾아봐라~!” 라고 시험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가까이에 두시고 친절히 안내하신다.
그러나 가만히 있지 않으면 이러한 인도하심을 발견할 수 없다.
흔히 자신의 짝이 매우 특별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먼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여기”에는 자신과 어울리는 배우자깜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자꾸 멀리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보라.
배우자를 찾기위해 일부러 멀리 다니지 말라.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라.
한편,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기다림을 의미한다.
특히 많은 형제들이 연애대상을 발견하고는 인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화조차 시작 못하고 퇴짜 맞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일을 하려고 시도했다가 그만, 쓸데없는 소란만 만들고 관계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기억하라.
짝을 찾는 일은 평범하다.
예를 들어, 단 둘이 손잡고 나가서 영화를 보는 일은 특별하다.
하지만,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사역을 함께 하며,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일은 평범하다.
주어진 평범한 일상 가운데 가만히 있어보라.
일상의 흐름을 잘 따라다녀보라.
기도제목을 나누다 보면 그녀의 속을 알 수 있다.
함께 단기선교를 다니다보면 자매의 화장끼 없는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
형제의 인격도 살필 수 있다.
예배를 드리다보면, 상대방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단 둘이 손잡고 나가서 어떻게 그속을 알 수 있나? 데이트 나가서 본 모습을 본다고?
아니면,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을 발견하겠는가?
비밀은 평범함에 있다.
멀리서 찾지 마라. 특별한 곳에서 찾지 마라. 바로 지금 가까운 곳에 이미 와 있는 배우자깜을 가만히 발견해 보라.
하나님이 누구를 보내주시는지 살펴보라. 모든 모임과 사역에서 눈을 떠라.
옆 자리에 누가 있나 봐라.
(4) 배우자를 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 (창 2:23)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가까운 곳에서 누가 배우자깜인지 가만히 살펴보라고 하면, 반문이 등장한다.
그것은 “어떻게”알아보고, “어떻게” 프로포즈를 하며, “어떻게” 결혼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냐는 것이다.
23절에서 바로 이 “어떻게”가 나온다.
하와를 보며 불렀던 아담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23절은 아담이 불렀던 야한 노래, 뜨거운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는 고백은, 그녀가 자신의 짝인것을 아담이 알아봤기 때문에 가능한 노래였다.
이 일을 하나님이 진행하셨다. 그녀를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인도해오셨다.
아담이 눈을 떴을 때, 거기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배우자가 있었다. 그리고 아담은 바로 그녀를 알아봤다.
많은 싱글들이 운명의 짝을 찾는다. 하지만 창조주는 우리에게 운명의 짐 따위를 지워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스스로 발견하게 하셨다. 결핍과 외로움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충족시키는 배우자 또한 발견하게 하셨다.
결혼의 최초 디자이너는 창조주시지만, 그를 진행하는 것에는 사람의 역할을 포함하셨다.
23절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발견하기”이다.
아담이 하와를 알아봤다는 것은 발견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와가 옆에 누워 있었지만, 사랑의 세레나데 대신,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모두 준비하셨다. 이것을 아담이 발견했다.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담의 순수가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자신의 필요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가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하나님께서 재우실 때 잠드는 순수가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재울때 잠자는 순수가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잠자는 동안에는 꿈꾸는 순수가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불신으로 특별한 일을 수행하지 않을 순수가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가까운 곳에 평범하게 대기중인 배우자를 만날 준비를 하는 순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인도하셨을 때 알아보는 순수가 필요하다.
물론, 순수함은 깨끗할 때, 죄를 회개로 털어버릴 때 회복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이 새롭게 하실 때 까지 죄와 상처로 오염되어있는 마음을 회개하라.
고린도전서 5장 17절을 기억하라.
(5) 결혼을 명령하시는 하나님 (2:24-25)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they felt no shame.
(창 2:24-15)
아담이 하와에게 최초로 주었던 이름을 보라. 그녀는 최초로 “여자”라는 성 정체성을 받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같은 룰이 적용된다. 형제들이여, 배우자깜에게 “여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라.
그 방법은 사랑이며 노래였던 것을 기억하며 적용하라.
그녀의 여성적 매력을 찬양해줘라.
그녀에게 사랑의 이름을 주고,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하라.
또 자매들이여, 무조껀 NO라고만 말하지 말고, 이야기를 차근히 들어봐라.
“차은우”같은 비성경적 이상형의 남자를 기다리지 말라.
어떤 남자가 키가 큰지 아닌지만 살피지 말라.
그 대신 누가 자신을 알아보거든, “아이쿠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때가 왔군요!” 라고 찬양하라. 그러면서, 그 남자의 노래와 사랑고백을 잘 들어보라.
또한 말씀에 등장하는 결혼의 대 원칙을 준비하라.
부모를 떠나는 상황을 만들어라.
스스로를 아이처럼 생각하며 대하지 말고, 독립된 가정을 꾸려갈 부부 공동자아의 일원이 될 것으로 바라보라.
독립을 준비하라.
쉽게 물러서지 마라.
하나의 길이 막혔다는 것은 다른 곳에 길이 있다는 뜻이다.
찾아낼 수 있다고 믿으며 찾아내라.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결혼이니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독립을 준비하라.
또한 부끄럽지 않을 알몸을 준비하라.
단순히 복근 운동하고 다이어트 하라는 뜻이 아니다.
영혼육 모든 측면에서 전부를 공유할 준비를 하라.
전인격적 알몸을 준비하라.
하나님 앞으로 함께 벌거벗고 나갈 준비를 하라.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그래야 한다.
모든 준비자들에게는 루틴이 있다. 배우자를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도 그렇다.
성장은 훈련이 만들고, 훈련에는 루틴이 있다.
정시 기도와 말씀의 루틴을 가지고 영성을 훈련하라.
독서 루틴을 가지고 지성을 단련하라.
운동 루틴을 가지고 체력을 키워라.
믿음으로 인내하며, “둘이 한 몸”을 이룰 준비를 전인격적으로 부지런히 진행하라.
4. 성경이 보여주는 "이상형" 프로토타입
자, "나는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대답해보자.
다시 15절부터 보자.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
(창 2:15).
(1) 그는 사명이 있는 남자다 (2:15)
다시 말하지만, 자매들은 이런 남자를 달라고 기도하라.
한편 형제들은 이런 남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첫째, 그는 사명이 있는 남자다.
아담만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한 남자," 결핍된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
에덴땅도 결핍을 가진 장소로 창조되었다. 그것은 15절을 통해 알 수 있다.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
(창 2:15).
하나님이 아담에게 두가지 임무를 주셨는데, 하나는 경작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키는 것이었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에덴동산은 경작자를 필요로 하며, 지키는 자를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에덴은 이 부분에 결핍이 있는 장소로 지어졌다.
그런데 에덴동산과 아담 사이에 진행되는 필요와 충족의 관계를 보면 흥미롭다. 왜냐면,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충족-결핍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 창조를 회상해보라: 그는 “돕는 배필”의 “필요”를 가진 남자였다.
아담이 맡았던 임무를 살펴보라: 에덴동산은 “경작하며 지키는 자”의 “필요”를 가진 장소였다.
이들을 연결해서 그림으로 표현해보자면 이렇다
에덴동산, 아담, 그리고 하와는 “결핍과 충족”으로 맺어진 독특한 관계였다.
거기서 남편은 아내와 세상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하와의 존재는 아담의 “돕는 배필” 결핍을 충족했다.
아담의 존재는 에덴동산에게 필요한 “경작하며 지키는 자”의 결핍을 채웠다.
하나님이 이들 셋을 아담을 중심으로 연결하셨다.
하와는 결핍의 끝에서 아담을 통해 세상으로 나갔고, 세상은 충족의 꼭대기에서 아담을 통해 하와를 만났다.
이 둘 사이에서 아담의 역할은 분명했다.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일이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부부는 함께 세상의 결핍에 대해 긴밀했고, 세상은 부부를 통한 충족으로 만족했다.
아담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는 남자였다.
동산은 아담때문에 안전했고, 남편은 아내 덕분에 완전했다.
받은 사명을 중심으로 최초의 남자는 세상과 가정을 연결했다.
성경적 이상형, “사명이 있는 남자”에게는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경작하는 남자다.
세상과 아내 사이에서 세상을 경작하며 지키는 남자가 당신의 이상형이 되게 하라.
자매에게 뿐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상형을 갖는다는 것은 그에 걸맞도록 자기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사명이 있는 남자”에 걸맞는 사람이 먼저 되라.
예를 들어, 요즘 청년들이 흔히 말하는 “헬 조선” 운운云云에 동참하는 남자를 피하라.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며 “헤븐 조선”을 만들겠다는 자세를 가진 남자가 있거든: (1) 형제들이여 그런 남자를 본받으라, (2) 자매들이여, 주님의 이름으로 그런 형제를 유혹하라. 동시에 세상을 하나님의 땅으로 경작하려는 남자가 되도록 돕는 여자가 되라.
둘째, 지키는 남자가 성경적 이상형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를 위반하는 모든 세력으로 부터 동산을 보호할 임무가 있었음을 기억하라 (2:16, 17)
말씀에 위반되는 철학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쫓아내는 남자를 당신의 이상형으로 품어라.
하나님의 통치가 지속되도록 여자와 세상을 말씀으로 지키는 남자가 되라.
진리 기준에 집중시켜 하나님의 통치를 보호해 내는 남자가 되도록 돕는 여자가 되라.
셋째, 사명을 아는 남자는 부지런하다.
자기가 뭘해야 하는지 모르는 남자는 게으르다. 이것은 단순히 바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근원적인 문제다.
누군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동시에 기도하지도 말씀을 읽지도 않는다면, 그는 게으른 사람이다.
또는 어떤 일이든 바쁘게 진행하면서도 정작 소명 바깥에서 행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게으름이다.
사명 없는 곳에서의 열심은 부지런함으로 볼 수 없다.
농부를 예로 들어보자. 그의 사명은 농사다. 그러나 다른 일로 바빠서, 정작 “가을에 밭갈지 않는다면?” (잠 20:4)
크리스천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다른 일에 급해서 기도와 말씀에 소홀하다면?
한편, 게으름을 피하고 자신의 소명에 집중하는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시다.
배우자 만큼이나 소명도 당신 가까이에 있다.
하나님은 하늘 소명을 당신의 삶의 현장에서 동떨어진 곳에 꽁꽁 숨겨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인자하게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펼쳐두신 분이다.
그분은 소명에게로 당신을 직접 안내하시는 분이시다.
“경작하며 지켜라!”(창 2:15).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행되는 곳이 되도록 밭갈고 씨뿌려라. 적용은 각자 하는 것이 맞다. 환경이 서로 다 다르니까. 하지만 원리는 같다.
어디?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언제? 지금,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환경이 되도록 경작하기와 지키는 일을!
하나 덧붙여, 자매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사명이 있는 남자”가 형제들이 되어야 할 모습이라면, 자매들은 “돕는 베필”의 사명이 있음을 기억하라.
“돕는 배필” 역할은 고급스럽고 어렵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성장이 필요한 영역이다. 생각해보라. 사명이 있는 남자를 만나더라도 자신에게 그를 도울 실력이 없다면 그를 아깝게 놓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아담보다 나은 사명자가 되도록 준비하라.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된 성경지식을 반복 실행하며 지혜를 연마하라. 일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반복하라. 모세의 아내 십보라 처럼 구원의 배후자가 되기까지 지속 성장하라.
또 한편, 완성품만을 찾지 마라. 오히려 덜된 사람을 사명의 남자로 바꿔갈 실력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라. 누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형제인지 찾아보라. 남자의 성장 가능성을 간과하지 말라. 여자가 바꿔갈 영역의 빈 자리를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앞서 모세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한낱 찌질한 중년이었다. 범죄자인데다가 노총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가능성이 있는 남자였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체성 불분명의 도망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십보라는 그를 바꿔갔다.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명에 대한 미래가 있는 남자를 찾아 그를 키워보라. 제때 말씀 먹이고, 기도로 옷 갈아입히며, 사역의 현장에서 함께 눈물의 씨를 뿌려라. 나도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무럭 무럭 잘 자라는 남자는 의외로 애완견보다 훨씬 귀엽다.
(2) 말씀을 전해주는 남자 (창 2:16, 17)
성경적 이상형의 두번째 모습은 “말씀이 있는 남자”이다. 16절과 17절을 보라.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of it you will surely die."
(창 2:16-17)
아담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다. 하와보다 먼저였다 (2:16-22). 나중에 둘이 부부가 된 이후, 하와는 남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었을 것이다. 즉 하와는 아담을 통해 말씀을 충족받는 관계에 있었다.
여기서 아담의 임무 즉, “지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
만약, 아담이 하와에게 선악과 금지 말씀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 기준이 없었겠지? 그랬다면, 하와는 죽음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았겠지? 그랬다면, 그 “보암직도 먹음직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창 3:6) 열매를 진작 따먹고 먼저 죽었겠지? 게다가 하와는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전혀 모른채 억울히 죽어갔겠지? 그렇다면, 그 책임 소제는? 당연히 말씀을 먼저 받았던, 그러나 전하지는 않았던 아담 오빠에게 있었겠지?
선악과 앞에 서서 그것이 죽음의 열매인지 아는 지식이 없다면 하와는 죽을 수 있게 된다.
아담이 없으면 하와는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여기서 에덴동산을 “지키는” 아담의 임무는 하와에게 “말씀을 전하는” 임무와 연결된다.
조금 더 설명하기 위해 한가지 전문용어를 사용해 보자. “도덕적 통치.” 이 말은 법 기준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최초 에덴동산을 지배했던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기준은 말씀 한개였다.
이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자.
(1) 에덴동산에 있었던 하나의 말씀, 그것은 선악과 금지 명령이었다.
(2) 누구든 동산에서 그 말씀을 어기게 되면, 그 말씀대로 죽는다. 이것은 법이었다.
(3) 법을 아는 지식이 아담에게 선재했다. 아담은 하와에게 이 법을 전했을 것이다. 아담은 법의 전달자다.
(4) 하나님의 법 전달자가 받았던 임무중 하나가 바로 “지키는 것”이었다.
(5) 도덕적 통치와 지키는 행위를 연결하면 자연스럽다. 아담에게 직명을 주자면 “법의 수호자”로 불러도 무리가 없다.
(6) 법에 의한 도덕적 통치가 있는 사람과 장소. 이것은 “국가”를 의미한다.
(7)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통치이며, 하나님의 사람에 의한 법 수호이니,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 무리가 없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이제 그림을 조금 더 그려볼 수 있게 된다. (그림)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열쇠가 아담의 사명에 들어 있었다.
하와를 죽음에서 건지며 보호하는 길도 아담의 사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도덕통치를 실행할 때 그는 에덴동산도 아내도 “지켜낼” 수 있었다.
여기에 성경적 이상형의 두번 째 모습이 들어있다.
그것은 “말씀을 전하는 남자”이다.
말씀 전달자로 사는 남자에게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는 적대적이다.
“지킨다”를 사용해서 문장을 뭐든 만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군인이 나라를 지킨다. 복싱 챔피언이 자신의 타이틀을 지킨다. 어미새가 아기새들이 있는 둥지를 지킨다......”
지키는 행위는 적대적이다.
군인은 적군과 싸운다. 복싱 챔피언은 상대방을 때린다. 어미새는 침입자를 공격한다.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보호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말씀을 파괴하려는 모든 존재를 향해 공격적이다.
그에게는 의분이 있다. 진리를 파괴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들앞에서 그는 진지한 싸움꾼이다.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거스르는 모든 실행적 구조들에 대해 그는 공격적 파괴자이다.
둘째, 그는 겸손하다.
아담의 “지키는”임무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에게 있는 적대성의 무기는 말씀이다.
그는 이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다만 창조주로 부터 전해 받았다.
군인이 국가와 경쟁하지 않듯, 챔피언이 경기장 바깥에서 싸우지 않듯, 말씀 전달자 역시 법을 각색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자의로 싸우지 못하는 2인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죽고 사는 영적 전사다.
그는 겸손하다.
셋째, 그는 회개한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도둑이 있다면 누가 그의 이야기를 듣겠는가?
말씀을 전달하기 앞서 본인에게 먼저 적용해야 사명 수행이 가능하다.
아담은 먼저 들었던 말씀을 본인이 지켜야 했다.
그래야 전할 수 있었다. 이것을 우리에게 가져오자면, 회개하기이다.
참된 전달자는 먼저 말씀 앞에 무릎 꿇는다. 회개에 부지런하다.
(3) 결핍이 있는 남자 (창 2:18)
또 하나의 모습은 바로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이라는 부분에서 볼 수 있다.
18절을 함께 읽어보자.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창 2:18)
아담은 결핍이 있는 남자로 창조되었다. 그에게는 “돕는 배필”이 없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적 이상형의 세번째 모습을 보여준다.
결핍이 있는 남자. 그는 스스로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다. 언제든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홀로 있을때 가장 행복한 남자는 성경적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남자 역시 그렇다.
형제들이여,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남자가 되라. 여자 앞에서 자신의 단점들이 드러나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 남자가 되라.
그 대신, “그래서 나는 당신이 필요하지!” 라는 겸손한 선언을 하라.
또한 자매들이여, “나 잘난 남자”를 피하라. 그들은 당신의 이상형이 아니다.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 이외의 것으로 채우려 애쓰는 남자들로부터 도망가라. 오히려 성경적 이상형에 집중하라. 자신의 약점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에 도움을 받으려는 태도를 가진 남자를 찾아보라.
한편, 그런 남자가 되도록 돕는 여자가 되라. 왕자병의 치유자가 되라. 쓸데없는 자존감이라는 맹수의 조련사가 되라.
(4)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 (2:19-22)
성경적 이상형의 네번째 모습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남자이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을 결핍이 있는 존재로 만드셨고, 그 빈 자리를 채우는 최선의 배우자를 부족한 남자에게 이끌어오셨다. 그리고 둘이 한 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결핍과 배우자 인도하심 사이에 동물 이름짓기 업무가 있다 (함께 19절과, 20절을 읽어보자).
Now the LORD God had formed out of the grou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s of the air.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So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livestock, the birds of the air a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But for Adam no suitable helper was found.
(창 2:19-20)
이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일이었다.
첫째는 결혼의 일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과정이었고,
둘째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물론 아담은 둘 다 완수했다.
여기에 성경적 이상형의 네번째 모습이 있다.
그는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이다.
예를 들어, 룻기에 등장하는 보아스를 보라.
시어머니 나오미의 조언으로 밤에 몰래 보아스의 침실로 찾아갔던 과부 룻을 보라.
그녀는 보아스와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룻 3:3-5).
그래서 결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보아스는 그녀를 조용히 돌려보냈다 (룻 3:13).
싫어서가 아니었다. 보아스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법대로 결혼의 일을 안전히 이루려면 보아스는 그날 밤...너도 알다시피... 참아야만 했다 (룻 3:12).
뜨거운 하룻밤을 버린 남자가 아침부터 결혼하기 위한 일을 진행했다 (룻 3:15, 18).
남자라면 놀랄만한 장면이다.
“여자친구가 내 침대로 밤에 몰래 들어와 눕는다.
게다가 예쁘게 꾸미고 와서 유혹한다.
그러나 남자는 거절한다!” 남자라면 질문을 던질법한 장면이다.
“왜!?!”
자,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보라.
보아스가 그녀를 돌려보냈던 이유는 결혼하기 위함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려면 “기업 무르는 자” 법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그 당시의 문화적 특성상, 과부는 경제생활을 할 수 없었다.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별한 과부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것은 죽은 남편의 친족 중에서 그녀는 재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열이 중요했다.
친족 형제들 중에서 서열 순으로 물어서 사별한 친족 과부을 본인의 아내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했다.
자, 이제 다시 룻을 그냥 돌려보낸 보아스에게로 가보자.
만약 그대로 둘이 밤을 함께 보내버렸다면, 보아스는 “기업무르는 자 법”을 무시한 범법자가 된다.
본인보다 윗 서열의 친족 형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룻 4:1).
게다가 그 형님이 룻과 결혼하겠다고 할 경우, 그녀 역시 큰일난다.
왜냐면, 이미 보아스와 밤을 보낸 여자 즉, 간음한 여자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아스는 단순히 그녀와 이별하는 문제로 끝나는 것 뿐만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 그녀는 사형에 처해지게 될찌도 모른다. 그날 밤을 함께 보냈다면 보아스가 룻과 결혼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잘 아는 보아스는 그녀를 돌려보낸 후 부지런히 일했다.
결혼의 일.
앞 뒤 맥락을 읽어보면,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쉽게 드러난다.
그는 룻을 돌려보내자마자 기업무르는 자의 윗 서열을 찾아가서 룻과 재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받아냈다 (룻 4:4).
보아스가 얼마나 룻과 결혼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는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도 인지하고 있었다 (룻 3:18).
룻기 3장의 마지막 절에서는 보아스가 결혼의 일을 이루기까지는 쉬지 않을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룻과의 뜨거운 하룻 밤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의 일을 이루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가 남자다.
형제들이여, 멀리 내다보라. 결혼의 일을 이루라.
자매들이여, 시험해보라.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를 찾아라. 동시에, 자신의 남편깜이 결혼의 일을 이루는 남자가 되도록 도우라.
(5) 뜨거운 노래가 있는 남자 (2:23)
성경적 이상형의 또 하나는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이다.
먼저, 하와를 만났을 때 아담이 불렀던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어보라.
그것은 23절이다.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창 2:23)
이 노래를 통해 우리는 노래하는 남자의 세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자신의 아내를 알아보는 남자이다.
만약 아담이 눈을 떴을 때 옆에 있는 하와를 보며 “엇? 누구세요?” 라고 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아담은 하와를 알아봤다.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뼈 중의 뼈, 살중의 살”이라고 불렀다
뼈 중의 뼈!
예를 들어 손가락 뼈나 팔 뼈가 아닌, 뼈 중의 뼈, 두개골뼈라면?
살 중의 살!
만약 귓볼 살이나 엉덩이 살이 아닌, 심장 살이라면?
너무너무 중요하다.
그것들이 잘못되거나 없으면 나는 생명에 지장이 생긴다.
나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네가 꼭 필요하다.
너는 내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하고도 소중한 존재다.
아담에게는 자신의 짝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첫눈에 반했어요-고백남”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기 몸의 반쪽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가진 남자이다.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아담조차도 자신의 결핍에 대한 인지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렇다면, 죄가 가득해진 오늘날 우리들은 아담보다 못할 것이 뻔하다.
즉흥적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알아보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그 프로세스는 아담을 따른다.
그 1단계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다.
아담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먼저 임무를 부여받고 말씀도 먼저 들었다.
오늘날도 동일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의 소명가운데 말씀을 붙든 남자가 되는 것이 첫 단계다.
2단계는 자신의 결핍을 인지하기다.
아담은 동물들 이름짓기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배워갔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을 착실히 완수하는 과정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배우자를 단번에 알아보기 스텝 2는 다른 말로 일하는 단계다.
끝으로 3단계는 잠들기이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음을 기억하라 (창 2:21). 아담은 푹 자고나서 하와를 만났다. 자고 깨어났을 때 하와를 알아보게 되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잠들어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다음 절에서 따로 다뤄야 한다. 21절에서 25절까지 다시 한번 함께 읽어보자.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Then the LORD God made a woman from the rib he had taken out of the man, and he brought her to the man.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they felt no shame.
(창 2:21-25)
(6) 잠들어 있는 남자 (창 2:21-25)
시골 양치기 소년 요셉에게서 이집트 국무총리의 비전을 가지셨던 하나님을 보라.
요셉이 그 비전을 언제 발견했는가?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기 위해 요셉이 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잠.
요셉은 꿈꾸는 남자였다.
다시말해 자고 있던 사람이었다. 비슷한 그림이 아담에게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돕는 배필을 직접 빚으시는 동안 그가 했던 일 역시 잠이었다. 그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잠들게 하셨으니 자면 되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이유는 아마도 외과 수술이 1차적 이유였던 것 같다.
그의 갈빗대 하나를 가져다가 하와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2:22).
외과 수술을 위한 마취에서 환자가 깨면 큰일이다.
아마 쇼크사 할지도 모른다. 아담은 배우자가 완성되는 동안 깊이 잠들어 있어야만 한다. 중간에 벌떡 깨어 일어나면 절대 안된다. 아마 놀라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담의 깊은 잠에는 2차적 이유도 짐작된다.
그것은 다음 구절에 등장하는 “뼈 중의 뼈, 살중의 살” 노래와 “둘이 한 몸”의 맥락에서 파악 가능하다 (창 2:23, 24).
외과 수술을 마치고 그를 깨운 것은 맥락상 그의 아내였고, 그녀를 인도하신 하나님이셨다.
아담은 한마디로, 결혼관계에서 하나님과 아내가 깨울때 까지 잠들어있는 남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이상형의 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형제들이여, 미래의 아내가 당신을 깨울때 까지 잠들어있어라.
포르노그라피를 거절하고 결혼을 꿈꿔라.
아내가 깨운적 없는 성욕은 결혼 메뉴얼에 없다.
누군가 다른 존재가 당신의 성욕을 이미 깨워버렸다면 회개하라.
새롭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라.
이미 깨어나버린 남성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부활하라.
지속적인 유혹과 죄의 결과들은 남자답게 “자기 십자가”로 짊어져라.
그리고 무겁더라도 주를 따라가라.
결핍을 인지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아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눈을 가지기 위해 훈련하라. 다시 잠들어라.
자매들이여, 이미 깨어나버린 남성을 가진 형제를 주의하라.
당신이 아내가 된 이후 조심스럽게 깨워내야 하는 성을 이미 잃어버린 남자는 성경적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스펙이 있고 식스펙이 있더라도, 그런 형제는 멀리하라.
동시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고삐풀려버린 성욕을 지니고 있는 죄인들을 도와주라.
당신의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이끄는대로 함께 간음하지 말라.
오히려 지혜롭게 그가 순결을 회복하도록 도와 주라. 함께 회개하라.
그러나 거칠게 다루면 역효과가 생기는 것도 주의하라.
다시 재우려면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
사랑의 자장가를 불러주며, 따뜻하게 품어 쓰다듬어주라.
기도제목 제안.
자, 오늘의 설교는 여기까지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혼과 성을 디자인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보았다.
성경에 우리의 인생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다 나온다.
오늘은 창세기 2장의 후반부를 보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결혼을 만드신 하나님은 누구신지 보았다. 또한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혹은 자신이 어떤 배우자깜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제 기도하자.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가지고 함께 소리 높여 기도하자.
기도 후에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는 사람 3사람이 연달아 기도하자.
그리고 마치자.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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