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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공간

[복음일기, 0711] "내가 디딜 발걸음, 주님이 이미 여신 길"

어제, 느헤미야 모임에 다녀왔다. 
거기서 김용의 선교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영혼 깊은 곳이 흔들렸다. 하나님 앞에서의 내 위치, 내 동기, 내 시선이 완전히 다시 점검되었다. 설교를 들은 후, 나는 골방에서 오랜 시간을 주님과 보내며 내 속에 감추어졌던 고백들을 다시 꺼냈다. 
그것은 다짐이었고, 회개였으며, 다시 출발하고자 하는 기도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다.
“교회 사역에 대한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게 해주소서.”

그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 속에서도, 여전히 ‘내가 할 일’이 나의 가치 기준이 되어버린 채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님은 내 속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미 하고 있다.”

그 말씀은 내 모든 불안과 조급함을 꿰뚫는 주님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음성도 들렸다.
“너는 지금 시험 당하고 있다.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하라. 유명을 버리고 무명을 택하라. 세우려는 교회를 버리고 나를 택하라.”

그 말씀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내가 기대던 것은 ‘사역의 의미’가 아니라, 사실상 ‘자기 증명’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없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왠지 작아 보이고, 초라해지는 듯한 감정. 
‘하나님의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자기 위장이 내 신앙의 구석구석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고백했다.
“주님, 저를 복음으로만 판단하게 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저 자신의 흥망성쇠를 해석하게 해주소서.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나를 세우겠습니다.”

그 설교 가운데 인용된 에스겔 16장의 장면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길가에 피투성이로 버려진 아이. 
탯줄도 끊기지 않았고, 피도 씻기지 않은 채 죽어가던 그 아이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 피투성이라도 죽지 말라.”
그 장면은 곧 나였다. 
내 존재 자체가 그랬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거두시고, 씻기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결국에는 품에 안으시며 신부 삼아주셨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받은 내가 어느 순간, 거울을 보며 오해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쓸모가 있어서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했다. 
그리고는 그 교만이 모든 걸 무너뜨렸다.

그 이후의 나, 
곧 예수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나의 열망도 주님의 뜻 안에 온전히 뿌리내리지 않으면 또다시 ‘사역으로 자기를 세우려는 교만’으로 기울 수 있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간절히 요청드렸다.

“정확히 어디서, 누구와, 언제 교회를 개척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하지만 주님은 또 말씀하셨다.
“미리 알려주면 너는 믿음의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그 말은 내 모든 기대와 전략을 내려놓게 했다.
주님은 ‘지시’보다 ‘신뢰’를 원하셨다.

나는 믿음의 시험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는 길은 단 하나, 말씀과 기도로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복음의 교제를 하라. 은혜 안에 거하라. 말씀을 기억하라. 새벽의 십일조를 내게 바쳐라. 너는 나를 섬기라. 금식과 산기도를 회복하라.”

지금 나는 "기적의 세대"에서 "영광의 세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출애굽의 홍해를 갈라놓고 건넌 세대가 아니라,
요단강 물이 가장 넘칠 때, 제사장들이 발을 내디뎠을 때에야 비로소 물이 갈라졌던 그 믿음의 세대로 초대받고 있다.

여호수아의 세대는 ‘들어가는 세대’였고, 순종의 세대였고, 임재의 세대였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나는 지금, 그 요단강 앞에 서 있다.
갈라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디디는 자에게 갈라지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부름받고 있다.

설교자는 어제 내게 물으셨다.
“너는 무엇을 하겠는가?”

이제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예수교회를 개척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어떻게 하겠는가?”

이 또한 답이 분명하다.
“믿음과 기도와 말씀과 순종으로, 임재와 동행으로!!”

주님이 하신다.
나는 그분을 따를 뿐이다.
주님이 열어주실 길에, 내가 발을 디딜 뿐이다.
나는 오늘, 다시 믿음으로 걷는다.
주님이 내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나의 가장 큰 상급이심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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