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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처치 설교및 강의/웨이설교

마9:1-8 믿음과 권위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9:1-8)

 

 

 

 

 설교에 앞서, 알아야 할 당시 상황 4가지. 

1. "본 동네"는 어디?

- 베들레헴 (고향-본동네?)

- 예수님 이사: 베들레헴 - 애굽(피난) - 나사렛 - 가버나움 (공생애 시작 하신 동네 = 본 동네)

 

▶ 내 고향(나의 본 동네)은 어디인가?

- 당신이 있는 곳. 내가 돌봐야할 영혼이 있는 곳? (X)

- 예수님이 나를 돌보시고 계시는 곳 (O)

 

2. "중풍병자"는 누구? 

(1) 당시 불치병으로 유명한 병. 

(2) 예수님이 고친 중풍병자들: 백부장의 하인(가버나움 작은 도시에서)

(3) 당시 [중풍병자 =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는 문화 코드

(그래서 요9:1~3에서 제자들이 질문)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수이이야기 -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어떻게 해결?!

 

 

3. "친구들"은 누구?  

바리새인의 질문: 누가 진짜 친구(이웃)인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예수님의 질문: 누가복음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누가, 죄인의 친구가 되겠는가? 

목요일 독서 모임때 나누었던 이야기: "목사병"

 

 

4. 예수님은 누구?

사역 시작하신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인물.

-무리: 병 고침(문제해결) 받으려는 생각 가득.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 회의적인 시각 가득.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눅5:15-17)

 

 

이렇게 4가지 배경 지식을 가지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시작기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기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4가지로 살펴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 첫번째는...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이신데, 

무리를 떠나 기도하시는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1. 무리를 떠나 기도하시는 예수님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예수님의 설교 사역 직후, 수 많은 무리가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무리를 떠나 배에 오르셨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른 관점으로 누가복음에서도 확인가능합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께서 배에 오르신 이유가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5-16

 

만약 당신이었다면, 저때 어떻게 했을것입니까?

저 같았으면, 다른건 몰라도 일단, 홀로 기도하러 떠나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 사역에 기름부으심이 있어서, 전국에서 말씀 듣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면,

일단은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어떤 일을 진행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자리에서 그룹핑 하고, 담당 리더들을 세우고,

사역 조직을 만들고, 더 많은 집회를 기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의 생각과 다른 모범을 - 말씀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예수님의 사역은 기도 중심의 사역이었습니다.

① 예수님은 기도가 사역의 우선순위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5-16)

 

② 예수님은 바쁘실수록 한적한 시간과 새벽시간을 만들어서 더욱 기도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막1:35-37)

③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도 습관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눅22:39)

④ 기도의 기회를 부자연스럽게 억지로라도 만드셨음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마14:22)

 

⑤ 기도를 중심으로 제자화를 시작~종료 하셨고 (눅6:12-13, 막14:32-42) 

⑥ 밤샘기도/ 새벽기도/ 금식기도의 모범 (마4장, 막1장, 14장...)

 

 

 

2. 치유하시는 예수님 

무리를 떠나 기도하신후, 예수님은 본 동네인, 가버나움에 이르셨습니다.

그 사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찾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현위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또 다시 예수님 계신 곳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중에는 당시 불치병 중 하나였던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환자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환자를 치유해 주셨는데, 성경은 그 이유를 

"친구들의 믿음"때문이라고 보고합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9:2)

 

친구들의 믿음이 중풍병자를 낫게 했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들의 믿음이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1) 예수님께 집중하느라 비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눅5:17)

 

(2) 예수님께 집중하느라 지붕을 뜯는 어려움을 감수했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18-19)

 

왜? - 친구였으니까요. 사랑했으니까요.

사람들이 많아서 가까이 못가면, 기다리면 안될까요?

안되죠!

왜요?

친구가 아픈데 어떻게 기다립니까?

 

▶교회 개척자인 나는 누구에게, 어떤 영혼에게, 이런 믿음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가? 

내게는 친구를 낫게 하는 믿음, 헌신, 사랑이 있는가? 

예화1) 95년 새내기때, 여름 수련회 회비 대신 내준 이름 모를 4학년 형님의 노가다.

예화2) 선배 교회개척자들의 헌신: 김상중 목사님의 금식, 이동찬 장로님의 헌신......

예화3) 주일학교 선생님의 헌신: 장위동 살때, 어린이날 종일 헌신한 유치부 선생님

내게는 그런 헌신이 있는가? 

 

 

3.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 

그런데 치유장면에서, 그 자리에 와 있던 권력자들에게

한가지 거슬리는 wording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 사함"이었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2)

 

그 자리에는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눅5:17)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죄사함"이란 하나님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병자의 병만 고치시는게 아니라,

죄를 사한다는 주장을 하시는걸 보고 놀라며 악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마 9:3)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반대하는, 서기관을 비롯한 당시의 권력자들의 영혼을 향해서도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9:4)

 

선과 악의 기준은 내게 있지 않습니다. 

선악의 기준이 내게 있다는 주장은 에덴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법은 하나님께만 있고, 판결도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내게는 의가 없고, 하나님께만 의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하나님의 의," 예수님을

"하나님의 의"로 받아들이지 않는 "악"을 행했습니다.

지적으로 알면서도

끝내 모른척하며 각자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자기 의"를 지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4-5)

 

우리에겐 죄사함이 더 쉬운 말 같지만,

사두개인들에겐 아니었습니다. 

죄사함이 더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문제는 사두개인들은 둘 다 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실현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누구실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 방식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본인들이 만든 답을, 확실한 정답으로 정해두고,

그것을 기준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 능력도 없었고

거기에는 아무 공감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반대하는 고집스럽고 거만한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 9:6)

 

치유의 능력(상대적으로 더 쉬운 일)을 보이시며

죄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에게로 사람들을 이끄셨습니다. 

 

이제 중풍병자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4. 영광을 받으시는 예수님 

이 명령 앞에 환자는 상대적으로 더 쉬운 일 - 불치병에서 완벽한 치유를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치유자일 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유자 - 즉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9:7-8)

 

생각해보면, 질병의 원인은 죄였습니다.

질문 하나만 해 봐도 알 수 있지요. 

만약 에덴에서부터 죄가 없었고 지금껏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고 있었다면, 현재의 질병들이 있었을까요? 

 

예) 충치는 죄 때문이 아니라구요? - 그렇다면, Q. 사탕수수 농장은 왜 오늘날과 같은 다국적 기업의 황금밭이 되었고, 우리는 과한 당 섭취를 하고 있나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 

예) 코골이나 대사 증후군은 죄 때문이 아니라구요? 그렇다면, 영양불균형과 비만의 원인은 어디서 온건가요?

예) 환경파괴? -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질병이 죄 때문이라면,

우리는 질병의 원인으로써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요? 

 

한낱, 죄의 증세로써의 질병들도 해결 못하는 존재가

어떻게 질병보다 더 어려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치유는 커녕 인류가 손대는 모든 것이 죄에 오염되었는데,

몸이라고 온전했겠어요?

 

죄인은 죄 문제를 해결 못하고, 그 때문에 질병과 죽음앞에서는 더욱 허무하게 굴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자기 자신만 허무(虛無)한 데로 이끈 것이 아니라, 그의 지배하에 있던 다른 모든 피조물까지 허무한 데로 이끌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0)

인간의 신체를 비롯한 모든 자연 만물 피조세계는,

인간처럼 "스스로" 허무한 데 굴복하지 않았고

인간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에 의해 함께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창 3:17-18


그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은 지배권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만물의 지배자였던 인간이 타락하며 그 지배권을 사탄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대표자인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당하는 "허무"를

인간에 종속된 피조물도 함께 당하게 된 것입니다.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19-20)


이러한 허무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피조물의 신음과 질병의 고통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날을 소망하고 있지요.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21-23)

그런데 우리의 허무를 끝장내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죄인들의 죄를 비롯해서 그들의 질병까지도 다 해결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자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나요?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8:16-17)
그러자 서기관도, 아비 장례 주장 청년도, 풍랑 만난 제자들도, 거라사의 돼지떼 주인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자신이 원하는 종교적 카테고리에 넣어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따르는데 실패했더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고, 따릅니까? 

 

 

 

 

5. 기도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질병을 이기신 방법은 그것들을 친히 짊어지시고 무덤으로 가져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때 질병의 원인이 된 죄에 임할 심판을 남김없이 담당하셨습니다" (존 파이퍼).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중풍병자는 병이 너무 깊어서 혼자서는 예수님께 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풍 병은 예수님께 오는데 있어서 넘기 어려운 장애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희생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 코앞 까지 올 수 있었고,

치유와 함께 구원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고난에 힘입어 질병을 고침받고 또 고쳐줍시다.

그리고 큰 믿음을 가지고, 환경을 희생적으로 초월해서, 이웃의 영혼구원에 힘씁시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10:8)

 

영육이 건강한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육이 병든 환자 이웃 앞에 놓인 장애는 그가 가진 질병이나 문제 상황이 다가 아닙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단 예수 앞으로 갈 능력이 없고,

예수 근처까지 가더라도 인산인해를 뚫고 들어갈 능력도 없고,

들어가 예수님과 조우하더라도 그 앞에서 무엇을 요구해야 할 지 모릅니다.

 

어쩌면, 환자는 진작 구원을 포기하고

고통을 숙명으로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죄와 그 결과는 숙명이 아니라, 예수께서 물리치신 세력이라는 진리를요!


우리 약속하십시다. 

친구를 구원하는 믿음 달라고 기도하기로요.

그리고, 우리 각자도 예수께로 나갈때 막히는 어떤 장벽들도

예수께 집중함으로써 초월하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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