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사실은 진리와 다름. 성내역 이야기
사실은 그 시대 상황에만 한정하여 맞는 말이고, 시대가 바뀌면 더 이상 참이 아닐 수 있음
진리는 영구함. 예수님 말씀은 진리. 영원히 유효한 말씀.
즉,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은 듣는 청중(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있고, 말씀하신 의도가 있지만 2,000년 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있음
2.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22장에 걸쳐서 하신 세 가지 비유는 한 자리에서 하신 비유로 보이며, 이 비유의 직접적인 청중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임
즉, 이 비유에 나오는 ‘초청을 거절하는 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라고 1차적으로 해석할 수 있음.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이므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며,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음.
이에 1차적으로 대제사장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2차적으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연결해서 살펴보려고 함
3.본문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심. 하나님 나라가 어떤지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살펴보려고 함
1)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명확히 하나님을 가리킴. 그리고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킴. 이 비유에서 임금이 혼인잔치를 베푸는 이유는 그 아들을 위함. 혼인잔치를 통하여 그 아들을 빛나게 하는 것이 목적. 어느 결혼식이든 주인공은 신랑 신부
아들을 빛나게 하기 위하여 임금(하나님)은 혼인잔치만 베푸는 것이 아님. 사람을 초정하고, 또 초청하고, 초청하였던 자들이 합당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로 초청을 확대하고, 예복을 적절하게 입었는지 살펴보는 일까지 함. 아들이 영광을 얻는 자리에 어떤 문제도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음.
하나님의 나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 아들을 위한 것.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이지만, 우리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빛나게 하기 위하여 참석한 한 명의 하객에 지나지 않음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이심. 우리를 창조하신 것도, 우리의 일상 생활을 다스리시는 이유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임.
2) ‘나 중심’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스라엘 문화권에서 큰 혼인잔치가 있을 때의 관행은 일차적으로 먼저 초청을 하고, 음식 등이 준비가 되면 구체적인 일시를 안내하는 것이었음. 3절을 보면 초청받은 사람은 이게 처음 초청이 아님을 알 수 있음
그 사람들은 최초 초청에 응한 사람들이었으나, 본격적인 혼인잔치가 시작되려고 하자 참석을 거절하였음. 이런 초청에 응하지 않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고 참석해서 먹기만 하면 되는 잔치에 왜 참석하지 않는 것일까?
첫 번째 해석은 직접적인 청중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임. 예수님이 혼인잔치의 신랑으로 계신데, 그 분의 모든 축복을 거절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가리키는 것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아라는 것을 여러 방면을 통해 말씀하고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이 놀라운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았음. 그리고 그 놀라운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은 궁극적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예수님이 도전한다고 느꼈기 때문임
두 번째 해석은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나 중심’의 삶 때문임을 보여줌. 어떤 자들은 자기 밭으로 갔고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갔다고 함. ‘자기’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함.
죽인 사람도 마찬가지임. 사람은 보통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박탈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함. ‘내’가 주인이고 싶은데 진짜 주인이 나타나자 그게 무관심에서 분노로, 폭력으로 바뀌게 됨을 알 수 있음
한편,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도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나는 장면이 나옴. 이 사람은 왜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일까?
이 사람은 왕이 준비한 예복을 입지 않았음. 네거리에서 아무 사람이나 다 데려왔는데 그 사람들이라고 예복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것임. 즉 왕은 모든 사람에게 예복을 준비해줬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임. 또한, 그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함. 만약 예복을 받지 않았다면 분명히 변명할 말이 있었을 것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은 왕이 분명히 다 준비해준 예복을 입지 못한 것으로 보임.
이 사람은 왜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일까?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 사람은 왕의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나아갔던 것임
3)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는 대가를 치른다
초청을 거절한 사람은 진멸하고 동네가 불사르는 대가를 치름
이건 통상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됨
처음에 초청받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음. 심지어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예수님도 죽임. 그래서 하나님께서 군대를 보내서 진멸하심. 실제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AD70년 예루살렘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함락을 당하며 불타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됨
두 번째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당하는 결과임.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지옥을 상징함
왜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면 어둡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일까?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빛이시고, 희락이시고 화평이시기 때문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성’에 있든 ‘속’에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맛볼 수 있음. 꼭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빛을 볼 수 있고, 화평을 이룰 수 있음. 하지만, 하나님께서 계시는 혼인잔치 밖에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없음. 행복, 화평, 희락, 기쁨, 빛 등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총이 끊기기 때문에 어둡고 슬피 울고 이를 가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음
4)혼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혼인잔치에 맞게 와야 한다.
당초 혼인잔치에는 초청받은 사람만 올 수 있었으나, 대상이 확대되었음. 아무나 와도 됨.
오는데 조건이 없으며 악한 자나 선한 자 다 오는 것이 허용됨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구별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에게로 확대되는 것을 보여줌.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인 예수님을 거절함으로써 새롭게 구원의 기회를 받게 된 사람들임.
하지만, 다 와도 된다고 해서 아무렇게 와도 되는 것은 아님
우리는 왕이 준비한 예복을 입고 가야 함. 오는 사람의 자격에는 제한이 없음. 어떤 행위를 해야만 들어가는 것이 아님. 하지만,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예복을 입어야 함. 예수님의 의의 예복을 입어야 함
5)혼인잔치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임을 안다.
여기서 임금이 초청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청함을 받은 자가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됨
그런데 임금이 특별히 누군가를 택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음. 그저 사람들이 선택해서 오고 예복을 잘 입고 있음에 따라 그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 그럼 예수님께서 굳이 여기에 ‘택함을 입은’이라는 표현을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예정에 따라 택하심을 입은 것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음.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택하심을 받는다는 표현을 쓰심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임금이 특별히 선택하거나 예정한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음. 그럼 왜 예수님은 굳이 택함을 입은 표현을 사용하신 것일까?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오늘 본문처럼 적극적으로 초청에 응하고 예수님을 옷 입음으로써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예정과 택하심 때문일까?
정답은 ‘예’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나기 전부터 우리를 택하셨음.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적극적으로 초청에 응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써 구원을 얻음.
마치 예수님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라는 질문에 답이 ‘예’이고, 하나님이 한 분이신가 세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예’인 것과 같음
4.맺음말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
둘째 ‘나’ 중심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
셋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대가를 치름
넷째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혼인잔치에 맞게 가야 함
다섯째 혼인잔치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됨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만, 하나님 나라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
분명히 혼인잔치는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우리는 들러리임. 그 잔치를 빛내기 위해 참여한 하객에 지나지 않음. 그리고 하객으로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혜임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로 부르심. 우리를 단순히 하객이 아니라 신부로 여겨주심
그 은혜에 감사하여 감격하며, 매일 예수님으로 새롭게 옷 입는 삶을 살아야 함
'웨이처치 설교및 강의 > 웨이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 23:1~12 (0) | 2023.07.04 |
---|---|
마 22:15-22 (0) | 2023.06.27 |
6/21 말씀 기도회 (왕상 1:1-4) (0) | 2023.06.21 |
마 21:33-46 (0) | 2023.06.13 |
웨이빌리지 여름 수련회 (0) | 2023.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