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생일선물
(예전 생일 선물 가져가기) 아내 생일 선물 사주기에 수십년째 매년 실패했던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생일이 다음주네요.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내가 답했다. "받고 싶은건 없어요. 다만, 어제 밤에 꿈을 꿨는데, 내 생일에 당신이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어요. 그리고 새 귀걸이를 사주었더라구요.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잠에서 깼죠.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이 대화 후, 일주일이 지났다. 아내의 생일이 되었다. 남편이 선물을 주었다. 아내는 선물 포장을 뜯으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선물을 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물건은 새 귀걸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꿈 해몽법"이라는 두꺼운 책이었다.
아내는 이번에도 크게 실망했다. 그럼에도 이 둘은 헤어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일 "다시" 기회를 주며 살아갔다.
창세기 9장을 읽어 보면, 홍수에서도 구원받은 직후 노아가정의 모습이 나온다. 무려 홍수 사건 직후였는데도 노아는 실수했고, 그 가문은 다시 죄의 족보를 여는 가문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노아네와 헤어지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이후에, 그러한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새로운 시작(다시 시작할 기회)을 주신다. 노아의 실수와 그의 아들 함의 잘못된 반응에도 불구하고, "다시"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자.
본문: 창세기 9장
1.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주셨다 (창 9:8-17)
홍수가 끝나고 노아와 그의 가족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통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주셨다.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 9:11-15)
-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 중에서도, ‘다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며 언약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 언약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새 언약’의 모형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새로운 언약을 주셨다. 노아가 무지개 언약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용서받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복음의 언약을 주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6:4)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3:5-7)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을지어다 (히 10:22-23)
2.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복음을 떠나고, 예전에 하던 대로 죄를 범한다 (창 9:21-25)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셨음에도 그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그 자녀 족보는 또다시 죄의 족보로 바뀌게 된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 9:21-25)
- 방주에서 나오고, 은혜를 받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아& 노아의 세대가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죄의 길로 들어선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다시 무너진다. 다시 죄를 짓고, 다시 넘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아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함의 반응이다. 창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그것을 조롱하듯 전했다. 그의 형제 셈과 야벳은 반대로 아버지를 덮어 주었다.
하나님은 ‘다시’ 죄를 짓는 인간을 보시고도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함의 태도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를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행위이다.
→ 우리는 ‘다시’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지만, 함처럼 남의 실수를 비웃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하지만, 함의 죄에 대해, 질문이 생긴다. Q. 함이 왜 저주를 받아야 했을까? (“하체를 보고”의 의미에 대한 가설들)
① "하체를 보고"의 표면적인 의미▶ 단순한 "무례"였을까?
성경의 문자적 표현만 보면, 함은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창 9:22) 밖으로 나가서 이를 형제들에게 알렸다고 나온다. 여기서 궁금한 부분은.... 단순히 아버지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조롱하거나, 이를 경솔하게 다룬 것이 문제였을까? ▶ 일단, 유대 전통에서는 부모를 향한 무례함과 조롱도 심각한 죄로 간주되긴 한다. 하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단순한 무례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② ‘하체를 보다’라는 표현이 구약에서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구약성경에서 '하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עֶרְוָה'(에르바)이다. 이 단어는 주로 벌거벗음, 수치, 나체 등을 의미하며, 성적인 부도덕이나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이 단어가 쓰이고 있는,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은 모두 성적인 죄와 관련되어있다.
-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네 어머니의 하체는 곧 네 아버지의 하체이니 너는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어머니인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레 18:6-7) - 누구든지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그의 어머니의 딸을 데려다가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들의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자기의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가 그의 죄를 담당하리라 (레 20:17)
- 네 하체를 드러내어 음란을 행하였도다 (겔 16:36)
이러한 구절에서 'עֶרְוָה'(에르바)라는 표현은 모두 성적인 범죄와 연결되어있다.
③ 함의 죄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면?
일부 학자들은 함이 단순히 노아의 벌거벗음을 본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모욕하거나, 성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제기한다.
- 아버지 노아를 강하게 조롱하고 형제들에게 수치스럽게 떠벌린 것
-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고의적으로 조롱하며 형제들에게 알렸을 것이다는 가설이다.
- 만약 이것이 맞다면, 함은 노아의 권위를 모독했다고 볼 수 있다.
- 노아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더 나아가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
- 앞서 본 구약의 표현을 고려하면, 성적 모욕이나 근친상간의 의미일 가능성이 있다.
- 예를 들어,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잠든 상태에서 함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을 추론하는 학자들도 있다.
- 함이 노아의 벌거벗음을 보고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저질렀을 가능성
- 어떤 학자들은 함이 노아의 아내(어머니)와 동침한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제시한다.
- 이런 해석은 레위기 18장과 20장에서 "아버지의 하체를 범한다"는 것이 어머니와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점에서 나온 추론이다.
④ 왜 "함"이 아니라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
노아는 함을 직접 저주하지 않고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했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 9:25)
여기서 우리는 함의 행동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만큼 심각한 죄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더 나아가, 가나안 족속(후에 가나안 땅에 거주한 민족들)이 나중에 성적으로 타락한 문화(레위기 18장)를 가지게 된 것도, 함의 죄와 연결되어 볼 수 있다.
3. 하나님은 "다시" 회복의 길을 여신다 (창 9:26-29)
하나님은 죄로 인해 심판받아야 할 인간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노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또한,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자손을 통해 새로운 언약을 이루어 가셨다.
이러한 "다시"의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의 모형이다.
-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다.
-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회복시켜 다시 복음의 사도로 사용하셨다.
- 우리는 넘어져도 하나님은 다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복음의 은혜 안으로 다시 이끄신다.
나는 확신하노니 곧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아노라 (빌 1:6)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나의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한편, 노아의 가문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문을 통해 새로운 민족을 세우셨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이 계보를 통해 오시게 되었지 않은가. 복음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와 그의 가문을 보면, 복음이 보여주는 "다시"의 은혜를 보게 된다.
또 한편,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도 구원의 길을 이루시는 분이심도 보게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결론: "다시" 은혜 주시는 복음 안으로 우리도 "다시" 들어가자. 그 안에서 "다시" 살자!
순종 여정을 돌아보면, 수많은 ‘다시’의 순간들이 있었다.
- 범죄했을 때 다시 회개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
- 상처받았을 때 다시 회복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
복음은 "다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이다.
예) 복음학교 직후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유혹들 앞에서 ▶ "여기고, 드리고, 계속 신뢰하라"를 기억하며 반복!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1)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2-13)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롬 6:19)
창세기 9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된다.
✔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주셨다.
✔ 그러나 인간은 ‘다시’ 죄를 지었다.
✔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회복의 길을 여셨다.
우리도 삶 속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조차, 다시 넘어지고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다.
혹시 오늘 죄책감과 실수로 인해 주저앉아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자.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다시 은혜 주시는 주님 안에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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