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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및 강의/웨이설교

창세기 11장. 바벨탑과 복음

[초안]

바벨탑과 복음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11장

I.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오늘날에도 인간은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계획을 무너뜨리신다.
그 대신 참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다.



II. 바벨탑 사건의 의미와 복음적 연결

 

1. 인간의 교만과 반역.


“우리 이름을 내자” (창 11:4):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영광을 추구한 첫 번째 시도.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죄와 연결됨.

바벨탑의 교만은 오늘날에도 자기 성공과 자기 중심적인 삶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나타남.


2. 하나님의 심판과 언어의 혼란 (창 11:5-7)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을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더 큰 구속의 계획을 이루고 계심.

언어를 흩으신 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악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


3. 바벨탑과 오순절 –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 (행 2:1-11)


창 11장에서 인간의 언어가 흩어졌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임재로 다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줌.
>복음의 재창조사역.

바벨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 가려 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시는것.
"내려와보신" 바벨의 하나님과 복음의하나님.

바벨탑이 인간의 교만과 실패의 상징이라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승리의 상징.


4.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창 12:1-3)


바벨탑 심판 이후, 하나님은 흩어진 인류를 모으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심.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창 12:3)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됨.


5. 참된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다 (마 11:29, 엡 2:8-9)

인간이 자기 이름을 높이려 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

우리는 우리의 높이려는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진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


 

 

III.  바벨탑이 아니라 십자가로 나아가자.


나는 여전히 바벨탑을 쌓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아래서 죽어지내는가?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예) 여기고,드리고,지속신뢰하라

바벨에서 흩어진 인간
십자가와 복음 안에서 하나되게하시는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심판이아닌, 영광과 은혜를 얻어, 들어갈 수 있다.


적용 질문:

1. 나는 삶에서 어떤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가?

2.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3. 우리 교회는 바벨탑처럼 자기 이름을 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가?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실패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조명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우리는 바벨의 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기도하자.

.........

참고: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히브리어 이름과 그 의미

1. 셈 (שֵׁם, Shem) – (창 11:10)

의미: "이름" 또는 "명성"

노아의 아들 중 하나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됨.


2. 함 (חָם, Ham) – (창 10:6, 창 11장에는 직접 언급 없음)

의미: "뜨거운" 또는 "타오르는"

노아의 아들 중 하나로, 가나안 민족과 일부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의 조상이 됨.


3. 야벳 (יָפֶת, Japheth) – (창 10:2, 창 11장에는 직접 언급 없음)

의미: "넓히다" 또는 "아름다움"

노아의 아들 중 하나로, 유럽 및 북방 민족의 조상이 됨.


4. 벨렉 (פֶּלֶג, Peleg) – (창 11:16-19)

의미: "나뉨"

그의 시대에 "땅이 나뉘었다"(창 10:25)고 하며, 바벨탑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음.


5. 욕단 (יָקְטָן, Joktan) – (창 11:26, 창 10:25-29)

의미: "작게 하다" 또는 "축소됨"

에벨의 아들이며, 아라비아 지역의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된 인물.


6. 에벨 (עֵבֶר, Eber) – (창 11:14-17)

의미: "건너간 자" 또는 "건너편"

셈의 후손으로, 히브리 민족(Hebrews)의 어원이 된 인물로 추정됨.


7. 스룩 (שְׂרוּג, Serug) – (창 11:20-23)

의미: "덩굴" 또는 "얽힘"

나홀의 아버지이며, 아브라함의 조상 중 하나.


8. 나홀 (נָחוֹר, Nahor) – (창 11:22-25)

의미: "콧김을 내뿜다" 또는 "분노"

데라의 아버지이자 아브라함의 조상.


9. 데라 (תָּרַח, Terah) – (창 11:24-32)

의미: "지체하다" 또는 "떠돌이"

아브라함의 아버지로,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하란에서 멈춤.

10. 아브람 (אַבְרָם, Abram) → 이후 아브라함 (אַבְרָהָם, Abraham) – (창 11:26-31)

의미:

아브람: "존귀한 아버지" 또는 "고귀한 아버지"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아버지" (창 17:5에서 하나님이 개명)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됨.


[1차 수정]

바벨탑과 복음 

Q1. 다양한 언어는 왜 생겼는가?
Q2. 여러 민족과 국가의 존재는 죄의 결과인가?
Q3. 하나님은 거대한 하나의 단일 국가를 원하시는가?
Q4. 우리의 근본적인 죄는 무엇이며, 하나님은 이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주셨는가?

 

1.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들의 족보가 나온다. 이어 11장은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이 충돌하는 사건을 보여준다.

바벨탑 사건은 죄로 인해 흩어진 인간들을 다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모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조명한다.

오늘날에도 인간은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고자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복음의 원리로 우리를 안내하신다.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고, 대신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다.

 

 

2. 바벨탑 사건의 의미와 복음적 연결

(1) 인간의 교만과 반역 

우리 이름을 내고 (창 11:4): 인간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영광을 추구하려 했다.

이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죄와 연결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2)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기 성공과 명성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하나님을 떠나는 성향.

인간은 스스로를 섬긴다. 문제는 하나님을 대체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선택했고,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그것이 부패한 마음의 모습이다. 자기 의를 주장하며, 하나님보다 자기 욕망을 따르는 부패한 본성을 가진 존재라고 성경은 거듭 말씀한다. 

 부패한 마음의 열매 = 하나님 대신 자기 자신을 숭배하기: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되었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막 7:6-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갈 6:3)   
→ 인간이 자신을 높이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 2:23)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종교적인 행위를 하며 겸손한 척하지만, 실상은 자기 중심적이고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놓였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1-2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3)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8-19)   
→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신으로 삼고 사는 모습.

 

(3) 하나님의 심판과 언어의 혼란 (창 11:5-7)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더 큰 구속의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

언어를 흩으신 것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이 더 악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다.

창세기 11장에서 인간의 언어가 흩어졌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 다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벨에서는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가려 했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시는 것이다.

바벨탑이 인간의 교만과 실패의 상징이라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승리의 상징이다.

 

(4)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창 12:1-3)

바벨탑 심판 이후, 하나님은 흩어진 인류를 모으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신다.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창 12:3)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갈 3:8).

 

(5) 참된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다 (마 11:29, 엡 2:8-9)

인간은 자기 이름을 높이려 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야 한다.

 

3. 바벨탑이 아니라 십자가로 나아가자

나는 여전히 바벨탑을 쌓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 아래서 낮아지며,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바벨에서 흩어진 인간은 십자가와 복음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나는 삶에서 어떤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 교회는 바벨탑처럼 자기 이름을 내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가?


[2차 수정]

바벨탑과 그리스도

 

1. 도입 

다양한 언어는 왜 생겼는가?

여러 민족과 국가의 존재는 죄의 결과인가?

하나님은 단일한 거대한 국가를 원하시는가?

우리의 근본적인 죄는 무엇이며, 하나님은 이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주셨는가?

 

2. 바벨탑의 죄

창세기 11장은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지만, 창세기 10장에서 이미 언어들이 존재했다고 나온다.

이는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배열이다.

창세기 10장은 사람들이 온 땅으로 퍼진 것만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는 불순종하고 있었다.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이 이를 심판하셨다.

(1) 바벨탑의 목적:

도시를 건설하여 흩어짐을 방지 (안정과 보안 추구)

하늘에 닿는 탑을 세움 (스스로의 영광을 위한 시도)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함 (하나님 아닌 인간 중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온 땅에 충만하라"는 창 9:1에 대한 노골적인 불순종.

 

(2) 우리의 죄와 연결

  ① 인간의 영광 추구 죄

  바벨탑 죄의 핵심: 하나님의 영광 대신, 인간의 영광을 추구하는 죄, 자기 섬김도 우상숭배.

  예)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한다.

  ② 안전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확보하려는 죄

  우리도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왜 문제? [하나님을 떠남~하나님의 심판~회개할 생각 없음~심판만 피하고 싶음~그런 의미에서 안전을 스스로 확보하려고 애씀]

 

(3) 하나님은 누구신가?   

사람의 칭찬 갈망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물리적 보안이 아니라, 하늘의 평강을 찾기 원하시는 하나님.

 

(3) 하나님의 심판과 역사 개입 

"하나님이 내려오셨다" → 인간이 만든 바벨탑은 하늘과 너무 멀어서 하나님이 내려와야 했다는 거룩한 조롱처럼 느껴짐.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적 하강을 의미. 

인간의 연합 자체는 문제 없음. 다만, 거룩한 연합이 아닌 것이 문제.

하나님은 인간의 연합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심으로 강제적으로 전 지구로 흩어지게 하심.

하나님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연합을 분열시키고,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다.

 

(4) 왜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을까?

 전 세계에 반(反)하나님적 거대 국가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종말의 때에 하나님은 이 제한을 풀고 적그리스도의 글로벌 통치를 허락하실 것이다 (관련 성구들 나열).

바벨의 죄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밝히 드러내기 위해(성구나열).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러 언어 속에서 뻗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성구 나열). 

모든 민족과 언어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게 될 것을 예비하기 위해(성구 나열).

 

3. 결론과 기도

바벨의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그리스도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관련 성구들 나열과 추가 설명).

내 이름 드러내기와 내 안전추구하기의 동기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때, 동기도 목적도 바뀐다. 

우리의 이름과 안전을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민족과 언어가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되도록 기도하자.

모든 민족과 언어가 결국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양하게 될 그날을 소망하며, 찬양하고 기도하자 (계 7: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