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4가지 역할
Q. 족보를 읽을 때 무슨 생각이 드나?
-야성 송씨 족보 보여줌.
엘 오난 셀라
송명일
고려 현종때
1032년 전
(1) 호기심, "궁금하다!"
연대(송건익 할아버지는 고종 23년), 이름, 장소(경북 상주), 사건(누구와 결혼해서 누구를 낳았는지, 첩이 있었는지, 누가 누가 서자였는지 ......)
(2) 사실성, "진짜였구나!"
그렇게 찾다보면, 사실(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임을 발견하게 된다.
(3) 존재감, "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내 현재 존재에 대한 확신과 용기 현실 적용)
"뿌리가 사실이다. 나의 존재는 무겁고 사실적이다.
예) 내 족보는 35세손까지 기록 - 1050년의 기록. 사명감. 1050년의 세월의 무게가 내 가정에 관통하는 느낌.
(4) 사명감, 가정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 - "나도 다음 빈 칸을 채워 나가고 싶다!"
예) 족보의 다음 빈 칸을 이어나가며,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선대가 되어주고 싶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들을 해봤음.
1. 호기심
4복음서중 마태복음
구약 성경은 유대인들에게 헌법이자, 법률이자, 공문서였다.
예) 이방인 여자 이름 기록!? -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다말의 예.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창38:26)
유대인들에게는 첫 문장부터가 강렬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1:1)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 그러나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메시아, 그리스도에게만 해당! (삼하7:12-17)
(참고)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1:17)
세어보면 바벨론~그리스도까지 14대 아니라 13대.
이유는?
*어떤 책에 이렇게 해명:
→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 "게마트리아"때문에 숫자를 맞춘 것이다.
이 설명으론 부족......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과 둘째 여호야김과 셋째 시드기야와 넷째 살룸이요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여고냐, 그의 아들 시드기야요
(대상3:15-16)
여고냐는 요시야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다.
요시야의 아들들이 마태족보에서 건너뛰는 이유 2가지.
이유1. 성경적 pause
→ 마태복음은 당시 구약을 잘 아는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
→ 너무너무 유명한 사건의 중심인물인데 어떻게 모르나?
→ 그들이 여기서 잠시 멈추면, 맥락을 살피게 된다.
14+14+14
다윗+다윗+다윗
→ 다윗 사건의 핵심 = "다윗의 자손"
이유2. (여호야김의) "죄"와 "구원"에 대한 묵상
다윗 왕조 멸망 대 위기 3번 - 각 기수마다 첫 왕과 마지막 왕이 맞물려 있음.
(1) 솔로몬 우상숭배때
- 국가 분열 - 남유다 초기에 반짝 but. 남유다 여호사밧왕이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교류하며...ㅜㅠ
(2) (아합왕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 여왕때
- 유다로 시집와서 왕비가 되었으나,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스스로 왕이 되려고 다윗의 씨를 말려버림(1살 된 어린 왕자 요아스를 통해 겨우 살아난 다윗의 자손 계보).
(3) 아하스왕의 우상숭배
(북이스라엘 멸망 직후, 불안해서 애굽 의존하며 전 세계의 우상을 유대에 다 갖다놓음) - 후대 히스기야 왕의 몸부림에도 불구 - 그 아들들의 세대에서 또 추락 -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 그 다음에 최악으로 추락(여고냐의 아버지 왕, 여호야김) -
마태 족보 기록 없는 "여호야김"-최악of the 최악.
-예레미야22, 26, 36장이 온통 여호야김의 죄에 대한 이야기
-우상숭배는 기본. 자기 궁전 짓기, 가난한 백성 착취, 선지자들 처형, 말씀을 소각......
2. 사실성
실제 역사의 일부 - 당시 족보는 공문서였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눅2:1-5)
우리가 믿는 성경은 미신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는다.
성경은 스피릿이나 허상을 전수하는 책이거나, 종교경전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창조로 부터 시작해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 전체를 기록한 사실적인 책이다.
진실을 담은 책이다.
▶"진실"은(팩트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예배를 할때 무엇으로? =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믿고 예배하는 것을 원하신다.
예) 우리가 예배도중 울거나, 부르짖거나, 가슴을 치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등의 감정표현을 하는 것 역시 진실(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한 행위 일 때 참되다.
-이 부분은 인용 (신앙감정론, 조나단에드워드)
"신앙 감정이 매우 높이 고조된다는 것이 그 감정에 참된 믿음의 본질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표지가 될 수 없다....그들의 감정이 너무 고조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열광주의자로 정죄하는 사람들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신앙감정이 단지 크게 고양되었다는 사실은 그 감정들이 반드시 영적이고 은혜로 말미암았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예배때 격렬한 감정 표현이 틀린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
그렇다면, 참된 신앙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 12가지 표지를 제시하는 중, 4번째 표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거룩한 감정은 빛 없는 열이 아니다. 거룩한 감정은 언제나 지성을 깨우는 어떤 정보나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어떤 영적인 가르침이나, 어떤 빛이나 실제적인 지식에서 생겨난다. 하나님의 자녀는 은혜로운 감정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이전보다 신적인 일들을 더 많이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3. 존재감(3분)
족보를 보며 답해보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야성송씨 충숙공파가 다가 아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의 혈통, 보혈혈통이다.
1대. 창조로 부터 그리스도까지,
2대. 또 그리스도로부터 나까지,
3대. 그리고 나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역사의 무게를 다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 성경의 사람, 족보의 사람, 보혈혈통의 사람이다.
내 뿌리는 꿈이 아니라 사실이다. 나의 존재는 무겁고도 사실적이다.
(이렇게 적어봤다 - 그대로 읽어보겠다)
나는 하나님 나라 소속이다.
나는 창조주의 자녀다 (요 1:12).
나는 하루하루 근근이 생존하기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기 위해 창조되었다 (창 1:22).
나는 싸움꾼이다. 이기고 이기신 주께서, ‘너도 이기라’고 부르신 영적 싸움꾼이다.
나는 인생의 격전지마다 예수깃발 꽂으라고 보내신 기수旗手부대의 핵심 요원이다 (고전 15:57).
나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는 영생을 전염시키는, 생명의 물줄기이다 (요 11:25, 26).
나는 능력의 전달자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기 위해 산다 (눅 4:18,19).
지금 함께 예배 드리는 사람들은 서로 보혈의 피를 나눈 전우이자 형제 공동체이며 (엡 2:13),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신비하게 연결되는 영적 네트워크다 (고전 1:1-3).
나는 세상이 가지지 못한 평안을 세속에서 소유한다 (렘 29:11,요 14:27),
나는 죽음을 이긴 생명력으로 귀신의 세력을 멸하며 (히 2:14),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어떤 두려움도 없는 맹수같은 존재다 (암 3:8, 요일 4:18).
나는 성경에 근거한 삶과 죽음을 몸에 지니며,
천국에 잇닿아 세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초월자다 (갈 2:20).
나는 어둠가운데서 빛난다.
나는 썩고 냄새나는 곳에는 희생으로 스며 회복을 가져온다 (마 5:13,14).
나는 예수님 때문에 영생한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히 예수님과 동행한다.
4. 사명감 (2분)
족보는 예수중심이다.
나도 예수 중심으로 살며, 예수 중심의 세대를 일으키기 위해 살고싶다!
이를 위해 먼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며 살고 싶다.
(크리스천 생존수업 인용)
우리에게는 사탄에게 항전할 능력이 없다. 예수님이 이긴다.
더욱 영적인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긴다.
성경 공부 더 많이 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이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사역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긴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요 14:6).
승리는 진리에 달려있다.
승리의 비결은 예수님께 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승리에 의지하는 자가 이긴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길이다.
예수님만을 지고지순하게 믿고 의지할 때 그분의 승리에 뭍어가게 된다.
패잔병 사탄은 이 부분을 속인다.
승리가 예수님이 아닌 크리스천 자신에게, "나"에게 달려 있다고 속삭인다.
잘하면 스스로 이길 수 있다며 속이고, 잘못하면 패배할 수 밖에 없다고 속인다.
사탄의 별명은 “거짓의 아비”이다. 거짓말이 그의 전략이다 (요 8:44).
속임수만이 일시적이나마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사탄의 유일한 공격법이다.
그 속임수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한가지로 귀결된다.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가리는것이다.
5. 맺음 (1분)
족보는 예수중심이다.
예수중심의 인물로 살며 예수중심의 사람들을 일으키고 싶다.
-족보책 다시 꺼내보며, 다음 빈칸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문중 회관에 년 회비 보낼까 잠시 고민했었다.
-이내 보내지 않기로 결정: 이유 - 이 족보는 조상신 제사를 위한 목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cf. 우리는? 우리도 문중같이, 회비를 모으자. 세상 문중은 제사드리려고 회비를 모은다.
우리는 그보다 더 선한 목적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일꾼이 필요하고, 새로운 복음사역들이 필요하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에 또 다시 교회 개척의 사명을 가지고 섰다.
-과거의 무게를 가지고, 현재의 존재감으로 도전하며, 미래에 예수중심 세대를 만드는 일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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