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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대본/튀르키예와 중동관련

익투스: 튀르키예 교회 개척이 보여주는 신앙 여정

▶글 주제 요청 내용:

"SWM 선교회 로고 익투스와 초대교회의 모습, 그리고 현재 튀르키예지역에서 교회들이 생기는 과정에서 초대교회의 발자국을 다시 따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본다"는 식의 글을, 낭독했을 때 약 15분 정도 분량으로 써 주세요. 

그러니까 글의 흐름이, "선교회 로고 - 초대교회- 오늘날 초대교회처럼 생겨나는 현지 교회들"이 되도록 써 주세요. 


▶제목들 제안

  1. 익투스에서 첸틴 가족까지: 초대교회의 신앙을 잇는 튀르키예의 복음 이야기.
  2. 초대교회의 발자취: 튀르키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교회의 비전.
  3. 고난 속에서도 빛난 믿음: 익투스와 첸틴 가족의 사역.
  4. 마차 바퀴에서 시작된 복음: 초대교회와 현대 튀르키예의 연결.
  5. 익투스의 부활: 튀르키예 교회 개척이 보여주는 신앙의 여정.

 


 

▶ [첸틴 가족 이야기]와 [1세기 그리스도인 씨리즈 책들 중 일부를 인용]해 넣은 새로운 버전 + copyright 없는 사진들 검색 추가

 

 

 

1. SWM 선교회 로고와 그 역사적 뿌리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강력한 신앙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교회가 형성된 초기에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위험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것이 바로 "익투스" 심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 모양의 상징을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시라고, 서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익투스란,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코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밀성은, 복음의 특징과 닮아있기도 했습니다. 

  •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 13:11)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 4:1)

초대교회는 익투스 비밀 신앙을 통해

신앙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익투스"심벌은 초대교회의 순교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익투스"는 단순한 신앙의 상징을 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 순교자들의 영웅적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익투스"는 교회가 직면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지속적인 희망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구속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파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순교적 의미는 SWM선교회가 무슬림 선교에 있어서 중요시 하고 있는 복음의 성격을 잘 나타내줍니다. 

 

SWM 선교회는 미국 LA지역을 본부로 두고 있는 무슬림 선교 단체로, 그 로고는 마차바퀴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로고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그 모양이 신약 초대교회 시대의 에베소 지역에서 사용된 "익투스(ΙΧΘΥΣ)"라는 고대 그리스어 심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익투스"는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상징이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이름을 붙이자면, 지하교회 형태를 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하고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 이 기호를 비밀스럽게 사용했습니다.

 

익투스라는 단어에 대해 잠시 Heads up을 드리자면, 이는 일차적으로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ΙΧΘΥΣ"의 각 글자가 각각 다른 단어의 첫 글자를 나타내는 두문자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ΙΧΘΥΣ"는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Θεοῦ Υἱὸς Σωτήρ"라는 구절의 첫 글자들을 따서 만든 단어입니다. 

이는

"Jesus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Savior" 라는 신앙 고백이지요. 

 

 

이 물고기 심벌은 단순히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나누었던 순교적 신앙과 희생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비로운 기호를 통해 신앙을 지키고, 박해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내지 않고도 서로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 책 인용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로버트 J. 뱅크스(Robert J. Banks)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Going to Church in the First Century)와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A Day in the Life of an Early Christian: A Personal Record)를 읽어보면, 정말 생생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1세기 크리스천 시리즈를 통해 저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감시와 박해 아래에서 신앙을 실천했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가정 교회에서 모이며 공동체를 이루었고, 공적인 박해를 피하기 위해 종종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익투스와 같은 상징은 서로의 신앙을 암묵적으로 확인하고 격려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은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도전을 의미했습니다. 

 

뱅크스의 또 다른 저서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Stepping Out in Mission Under Caesar's Shadow: A Progress Report)에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SWM선교회의 로고에 담긴 초대교회의 정신과 깊이 연결됩니다.

 

 

 

 

 

 

(이하 에베소 관광지 사진은 copyright없습니다)

 

(위, 에베소 관광지 사진들은 pexels.com에서 다운받은, 저작권 없는 사진들입니다) 

 

 

 

 

2. 초대교회의 수레바퀴 심벌과 "익투스"의 순교적 의미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Ichthys#/media/File:Ephesus_IchthysCrop.jpg

(이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다운 받은 사진입니다.)

 

(1) 성경의 예시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박해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의 위협을 동반한 것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의 여러 구절은 당시 성도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9장에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아르테미스 신전을 둘러싼 경제적,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인해 도시 전체의 분노를 사고, 박해의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어떤 희생이 따랐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신앙이 발각될 경우, 모든 경제 활동이 중단되었고, 신체적 구속과 박해과 고문과 살해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고난을 견디며 인내하며 예수님의 재림 소망가운데 살았습니다. 

  • 에베소에서의 소란과 박해 (행 19:23-27)
  • 바울의 박해 경험 (딤후 3:10-12)
  • 바울의 에베소 교회에 대한 경고 (행 20:28-31)
  • 에베소 교회의 시험과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계 2:2-9)

익투스 심벌은 이러한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물고기의 단순한 그림은 외부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성도들끼리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익투스는 단순한 암호를 넘어서, 예수님 안에서의 희망과 구원을 상징하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2) 첨가된 예시: 첸틴 가족의 사역 이야기

SWM 페이지에도 소개 된 바 있는 첸틴 가족을 혹시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찌 모르겠습니다.

현재 사역중인 첸틴 가족의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신앙적 여정을 현대에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

첸틴 가족은 이슬람 배경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시 그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첸틴 가족의 가장은 본래 무슬림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믿음의 기둥으로서 큰 박해와 사회적 고립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그의 아내와 자녀들 역시 이러한 신앙의 여정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딸 헬린(Helin Yekbun)은 19세에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뒤 3년 이상 사역에 헌신하고 있으며, 아들 로샷(Roşat) 역시 18세에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로 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듯, 주변 사회의 조롱과 거부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며 공동체를 섬기고 있습니다.
특히, 첸틴 가족은 그들이 겪은 변화와 고난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증언합니다. 

가장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짜증 많고 무관심한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차분하고 사랑이 넘치는 남편과 아버지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되었고, 지금도 그들은 터키 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의 신앙은 튀르키예 현지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튀르키예 지역에서의 교회 개척 운동은 초대교회의 여정을 다시 걷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튀르키예는 과거 초대교회의 중심지 중 하나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이슬람이 주류가 되었고, 기독교인들은 극소수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초대교회와 같은 헌신과 열정을 가진 소수의 신앙인들이 다시금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이들은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익투스 심벌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그러했듯이, 이들에게도 신앙의 상징과 연합의 의미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첸틴 가족의 사역은 이러한 흐름의 생생한 사례로, 현대에서도 복음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공동체로 확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3. 현재 터키의 교회 개척과 초대교회의 여정

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 개척 운동은 초대교회의 여정을 되새기게 합니다.

튀르키예는 현대의 이슬람 국가로, 그 지역에서 기독교의 뿌리는 깊고, 그 역사는 1세기 초대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튀르키예에서 교회 개척은 여전히 많은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법적 제약과 사회적 반대,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은 교회 개척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의 작은 교회들이 지역 사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현재 터키에서 교회들이 새롭게 세워지는 모습은 초대교회의 초기 활동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각 지역을 돌며 복음을 전하고, 신앙 공동체를 세운 것처럼, 오늘날 터키의 선교사들과 지역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 개척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여정을 쉬지 않고 계속 이어가며, 때로는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회 개척 여정은 복음의 비밀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익투스 심벌처럼, 신앙 공동체 관계 안에서 고백하며 지키며 확산되는 신앙이 그곳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의 압박 속에서도 교회를 확장해 나갔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오늘날 튀르키예에서의 교회 개척도 마차바퀴처럼 꾸준히 회전하고 있습니다.

교회 개척자들이 경험하는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 사회적 도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교적 신앙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고난의 길이며, 결국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씨앗이 터키 전역에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터키의 교회 개척 운동은 초대교회의 '익투스' 심벌이 가리키는 그 신앙의 여정을 재현하는 과정이라고까지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신앙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나아가며, 때로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는 모습입니다.

 

현재 터키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회 개척은 초대교회의 정신과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익투스" 심벌의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순교적 신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며, 터키에서의 교회 개척자들이 그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희망과 영감을 줍니다.

 

 

 

4. 익투스 신앙은 우리에게 어떤 것일까?

현재 튀르키예의 신앙 모습을 보면 마치 초대교회의 단면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은 성경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처음 교회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전염병,"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들,' “이단," 등으로 불리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 11:38, 행 24:5).

그런 사람들은 교회가 시작된 직후 약 200년 동안 12명에서 2천 5백만명으로 증가했지요.

그러니까, 자그마치 2백만배가 넘는 증가 수치였습니다.

이런 거대한 부흥은 오늘날에도 처음 교회가 있던 바로 그 무슬림 지역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답하기 전에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더 해보게 됩니다. 

 

"그 처음 2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크리스천이 세상을 뒤덮었는가?"

교회개척자들중 하나인, 알렌 허쉬 (Alan Hirsch) 박사는 "초대교회 처음 200년간의 상황" 요인들을 다음 6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교회는 불법적인 종교활동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관련자 모두 함께 고발되어서 잔인하게 고문받고 처형당하는 것이었다. 

(2) 교회 건물로 불릴 만한 공식적 장소가 전혀 없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도 이를 증명한다. 집집마다 비밀리에 모여서 신앙 모임을 했다. 

(3) 성경책도 없었다. 사도들이 보내주었던 편지를 지역별로 돌려보는 정도였다. 

(4) 어떤 교회 기관이나, 전문적인 리더십이 없었다. 침착하고 자발적인 네트워킹은 있었다. 

(5)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과 너무 달랐다. 새신자 예배, 주일학교, 청년부, 신학교 등이 없었다. 

(6)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2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박해와 이단의 심각한 증가때문에 새신자는 자신의 신앙을 증명해야 하는 심각한 입단 기간을 따로 가져야 했었다.

 

우리는 성경뿐 아니라, 알렌 박사의 위와 같은 신학적 정리를 통해서도 익투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며, 세상에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정치/사회 조직인가요?

 

오늘날 우리는 신앙생활이 자유롭습니다. 

맘껏 언제든 예배 드리고, 찬양드리고,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만큼의 익투스 신앙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 최초의 200년이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려 동시대의 익투스 신앙의 증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허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재입니다.

우리가 현재 기도와 재정과 참여를 통해 돕고 있는 동역자들입니다. 

익투스 신앙은, 현재에도 튀르키예의 사역자들이 박해를 피해 펼치고 있는 비밀 사역 활동을 통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크리스천"은 누구입니까?

익투스 심벌 앞에 서서, 우리가 동역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사역자들 앞에서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5. 물리적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도전

물론 우리는 물리적 박해가 없는 상황 속에 삽니다.

그러나 익투스 신앙은 물리적 박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진정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9장에서 보여준 "믿음의 굳건함"과 같은 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그것이 사회적, 문화적 압박 속에서도 타협 없이 순수하고 진실된 신앙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익투스"의 심벌이 가리키는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교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물리적 위협이 없다면, 신앙을 지키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신앙의 자아도취나 타협입니다.

물리적 박해가 없는 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며, 진리의 복음이 세상의 문화와 가치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서로의 고난을 나누고 상호 의지했습니다.

우리도 물리적 박해가 없는 시대에 살지만, 영적인 박해와 도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여전히 많은 저항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교회가 했던 것처럼, 공동체를 중요시하고 서로 격려하며 믿음을 지켜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결국, 물리적 박해가 없는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의 "익투스" 심벌이 말하는 바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신앙을 지키는 것은 외압(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결단과 믿음의 진정성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에 대한 반응을 물리적인 박해의 위협이 아닌, 복음을 향한 우리의 충성된 헌신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맞춰,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난과 희생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를 따르는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복음이 우리 삶 속에서 진리로 살아 움직이도록, 우리가 가진 자유를 오히려 더 큰 책임감과 헌신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데 힘써야 할 때입니다.

 

박해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익투스 신앙으로 사역하고 있는 우리들의 동역자, 튀르키예의 개척자들을 중보하며 계속 후원합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계 2:1-7)

 

 

 

 

 

 

(아래 사진들은 개인 블로그에서 다운 받은 것들로써, 참고 하셔서, 다시 디자인 해서 올리면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