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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공간/헤브론성경통독_책

1장. 성경통독이란 무엇인가? (전체를 한번에 읽고, 다시 읽고, 더 읽는 것이다.)

[목차]

Part1. 오리엔테이션
1장. 성경통독이란 무엇인가? 
2장. 성경 통독을 왜 해야 하는가?
3장. 성경 통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Part2. 구약성경
4장. 율법서: 예수님의 구원 계획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5장. 역사서: 이스라엘에게 왕은 누구였을까? 
6장. 시가서: 우리가 힘들어할 때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7장. 선지서1: 예수님은 왜 심판하실까?
8장. 선지서2: 예수님은 왜 구원하실까?


Part3. 신구약 중간사
9장. 하나님은 왜 침묵 하셨을까? 
10장. 로마 제국은 어떻게 말씀 전파에 기여했을까?
11장.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Part4. 신약 성경
12장. 사복음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
13장. 사도행전: 예수님은 교회를 왜 세우셨을까?
14장. 서신서1: 예수님은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계실까?
15장. 서신서2: 예수님은 어떤 믿음을 원하실까?
16장. 요한계시록1: 예수님은 교회들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17장. 요한계시록2: 예수님은 어떻게 심판하실까?
18장. 요한계시록3: 예수님은 어떻게 구원하실까?
19장. 에덴에서 새예루살렘까지 성경 전체를 스토리 텔링하기 
20장. 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 우리는 어떻게 순종할까?
 


[1장. 성경 통독이란 무엇인가?]

 
1. 나는 평생 성경을 읽어왔다. 
나는 모태 신앙인이다. 탯줄을 타고 들어온 말씀과 기도 소리가 나를 키웠다. 남들 "응애"하고 태어날 때, 나는 "주여"하고 태어난 것만 같았다. 갓난 아기때도, 유치부에서도, 유년부에서도, 내 어머니는 성경을 계속 읽어 주셨다. 창조와 타락, 추적과 회복, 심판과 구원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성경이 내게 젖병처럼 물려졌고, 밥처럼 씹혔다.
그러다 청소년기에는 예수님을 만났다. 살아있는 분이셨다. 이전의 성경 이야기들이 그분을 만나면서 생명을 얻었다. 그 이후로 성경이 날마다 말을 걸어왔다. 읽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처럼 사실적이었다. 때로는 덮은 책 안에서도 말씀이 내 마음에 속삭이는 듯 했다.


2. 그럼에도 성경 읽기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성경이 어렵다. 50년을 읽었고, 수없이 강대상에서 전했지만, 성경은 여전히 쉽지 않다. 어떤 날은 한 줄도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반복되는 제사법 이야기와 족보 나열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심판과 눈물 범벅의 선지서, 전쟁과 실패의 역사서, 그리고 상징과 꿈으로 가득한 계시록에서 자주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덮는다. 덮으면 계속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따라온다. 그때는 책 한 권이 아니라, 짐 한 권이다. 그래서 다시 펼쳐든다. 읽다보면 자주 속으로 말한다.
“이 챕터, 내가 대체 몇 번을 읽은 거지? 그런데 왜이리 낯설지?”
놀랍게도, 그럴 때 또 운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또 운다. 다 본 장면인데 가슴이 또 뜨거워진다. 수 없이 읽었지만, 매번 새롭다. 또 전부 내 이야기 같다. 성경이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읽을 때 마다 놀란다.


3. 그럴때 성경 통독을 해야 한다.  
통독은 다 읽기다. 성경 통독은 성경 66권을 하나의 스토리로 단번에 읽어내는 일이다 (통독은 '전체를 읽는 일'이다. 성경 66권을 한 흐름으로 꿰어 읽어내는 것, 그게 통독이다).
또한 통독은 반복읽기다. 책별 내용들을 알면 전체의 맥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 멈추면 보이다 만다. 다시 읽을 때 시야가 분명해진다. 다시 읽을 때 맥락을 뚫고 성경이 진짜 보여주고 있는 단 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복해서 읽을 때에야 성경이 성경으로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경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알고, 주인공을 보기 시작할 때에야, 이야기들이 마음에 안착한다.
"인간이 창조주를 떠났다......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요셉은 기다렸다......다윗은 연약했다......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다......" 이전에는 멀리 있던 이야기들이, 반복 속에서 얼굴을 드러낸다. 관계를 맺는다. 마음에 엮여든다. 살아서 움직이는 인격체처럼 독자의 마음에 말을 건다. 질문을 한다. 경험 바깥으로 이끈다. 
그럴 때면 성경은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감정 처럼 바뀐다. 그것은 집채만한 파도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부터 내려오는 창조주의 호흡 같기도 하다(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직접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이 살아서 움직이는 말씀이 된다. 시시때때로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계절처럼 독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하늘의 사람으로 몰아간다. 천국문 앞에 세우고, 진위를 날카롭게 분별시키며, 천국의 상속자 자격의 확신을 준다.
성경책에 나오는 문장들은 신기하다. 마치 벽에 잘 박힌 대 못 처럼 마음에 탕 탕 박힌다. 성경통독을 하면, 움직일 때 마다 마음 속 깉은 어딘가가 아프다. 안아프던 곳에 고통이 느껴진다. 때로는 벚꽃 위로 내려쬐는 봄처럼 따뜻하기도 하고, 때로는 삼복 더위 아래 산골 계곡물처럼 시원하기도 하다.
말씀을 통독하다보면 말씀과 대화하게 된다. 이것은 통독을 하기 전의 기도와 전혀 다른 기도가 된다. 독자는 말씀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과 속삭이게 된다. 흔히 친구를 보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통독을 하는 사람에겐 성령님이 친구시다. 성경 통독을 하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큐티나 설교 노트 정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체를 읽고 반복해서 읽는 성경 통독이다. 말씀 읽기를 통째로 반복할 때, 하나님이 말씀을 반복하시고, 하나님이 반복해서 당신을 다듬으신다.


4. 읽고, 또 읽고, 더 읽고, 끝까지 읽는 것이 성경 통독이다. 
반복은 성경 통독의 핵심이다. 신명기가 떠오른다. 거기에는 “기억하라”, “잊지 말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신명기를 인용하셨던 예수님도 말씀을 반복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제자들이 깨달을 때까지, 십자가 구원의 사랑이 죄인의 심령을 뚫고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은 반복하신다. 우리는 그 반복 속에서 자란다. 예를 들어, 아기가 어떤 단어를 말하기 까지는 수만번 들어야 한다. 당신도 그렇다. 반복해서 들어야 당신의 입에서 성경이 나온다. 성경의 일부가 아닌 전체가 반복을 통해 마음에 가득차야한다. 성경을 또 읽고, 더 읽고, 끝까지 반복해야 한다. 


5. 반복해서 전체를 읽을때 성경이 당신안에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교회마다 성경통독을 출발한다. 그러나 성경1독은 끝이 아니다. 말하자면, 성경 완독은 졸업이이 아니다. 그보다는 입학이다. 처음 1독은, 성경 이야기의 숲에 들어선 일이라고 표현해보자. 그 다음 1독은 그 숲속을 걷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독자는 걸으며 성경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
“이 말씀은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질문들이 깊어질수록, 성경은 성경으로 반복해서 답을 내놓는다. 이때 통독 여정이 강해지며, 믿음의 수준은 그 뒤를 따른다. 성경 말씀은 성경을 읽는 사람을 성경에 맞도록 "형성"한다. 이것은 전체를 반복해서 읽는 것, 통독을 통해 진행된다. 그런 의미로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읽는자가 말씀에 동화 되는 것이다. 독자는 피동적으로 형성 당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성경 통독이다. 
성경 통독은 반복읽기가 답이다. 하나님은 반복 속에서 말씀하신다. 말씀은 반복 속에서 들린다. 성경은 반복 읽기를 통해 당신에게도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