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챕터 요약
출애굽 여정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배고픔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구원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벌이 아닌 "만나"의 은혜로 갚으셨다.
은혜 안에는 법이 있었다.
2.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1) 네게 있는 자기 중심적 태도를 버려라.
말씀이 거울같다.
내 모습이 말씀에 나오는 듯 하다.
출애굽 직후,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온 몸으로 체험했으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해야했다.
그러나 그 구원 앞에서 이스라엘은
구원하신 하나님보다
배고픔을 더욱 붙잡았고,
이것은 구원 받은 자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의 증거였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16:1-3)
그들이 원망하고 있는 모습은 불신에 가까웠다.
"원망" 그 자체도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지만,
그 대상마저 하나님이 아니었다니,
놀랍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했더라"고 기록되어있었다면,
원망의 대상이라도 하나님이니,
적어도 하나님의 존재라도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그들의 원망 대상마저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이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그들에 원망에 기록되어있는 하나님 신앙은 3절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이 전부였다.
이런 것이 나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는 하지만,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믿어도 너무 희미하게 대충 믿고 있다.
생명을 걸지 않고, 자아의 죽음도 없다.
내게 하나님 존재의 크기와 구원 역사의 무게에 비해, 그 인식 자체가 희미해도 너무 희미하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경험했듯,
나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십자가 구원 역사를
목격했고 경험했다.
그럼에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산다.
이것에 대한 증거가 내 생각과 마음 안에 잔뜩 있다.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과 같은 표현이 잔뜩 있다.
특히 동역자들과 의사소통의 문제로 고민하고 속앓이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나를 내가 잘 안다.
마음의 고통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생각들,
"만약, 내가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났던 어떠 어떠한 만남을 아예 시작하지 않았더라면....."식의 생각들이 있었다.
이런 내 생각들은 진실이 아니다.
그저 불신에서 나오는 원망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태도가 아니라,
나 중심적인 태도다.
불신에 거의 가까운 생각이다.
"나 중심성"은 구원이후의 삶에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것인데,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2) 나는 너의 "원망불신"을 "만나은혜"로 갚는 하나님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16:4)
구원에 합당치 못한 태도를 가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은 "만나"였다.
상식적이지 않은 결론이다.
상식적으로는 "만나"가 아니라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이것은 비상식적인 "은혜"였다.
"벌"을 받아도 모자란 이스라엘은
"벌"을 모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만나은혜"까지 받았다.
동일하신 하나님은 내게도 매일 만나와 같은 은혜를 하늘로 부터 비처럼 쏟아부어 주신다.
원망의 핵심은 자기중심적 태도였다.
나 역시
자기중심적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왔는데도, 하나님은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하늘로 부터 비처럼 쏟아부어 주셨다.
지난 12년동안 배불리 먹고 살았으며
(단 하루도 굶지 않았고, 매일 풍성한 양식이 있었다),
옷도 신발도 헤어지지 않았으며
(계절마다 새 의류를 살 수 있었고, 차도 3대나 살 수 있었다),
놀것 다 놀며 사역했고
(자전거여행, 가족여행, 글쓰기활동......),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기도의 은혜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하나님은 내게도 풍성한 은혜로 갚으셨다.
하나님은 나의 원망불신을 만나의 은혜로 갚으셨다.
(3) 은혜 안에 나의 법이 있다. 너는 나의 법을 지키라.
만나은혜는 방종과 거리가 멀었다.
만나은혜는 만나의 법과 함께 주어졌다.
만나법은 안식법이었다.
그 법의 이름은 "일용할 양식"법 이었다.
(만나의 다른 이름은 "일용할 양식"이었다)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출16:4-5)
만나 은혜에 있는 하나님의 법이 이 두 구절안에 다 묘사되어있다.
① 매일 일용할 것을 거두는 일을 할 것.
② 6일째 되는 날에는 두배로 거둠으로써 안식을 미리 "준비" 할 것.
③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는 일로부터도 떠나서,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안식을 누릴 것.
④ 이런 만나법을 주셨던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나 안지키나 시험하는 것"임을 기억할 것.
나는 만나법을 매일 지켜야겠다.
① 오늘 내게 "만나"란 "먹고 사는 일"을 하는 것 뿐 아니라, 동시에 "하늘 양식인 말씀"을 거두어 먹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두가지를 매일 해야겠다.
② 안식이 사역이다. 나는 매일 하루 리트릿 해야겠다. 또한 7년중 1년을 리트릿 해야겠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6일째의 준비"처럼, 미리 준비해야 이룰 수 있는 일들이다. 가족을 설득하고, 사역의 빈 자리를 미리 메꿔 두는 일을 해야겠다.
③ 하나님은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안식을 누릴 것을 요구하셨음을 매일 식사 기도 때 마다 상기해야겠다. 그동안은 식사 기도때, 예수님의 살과 피만 기도했는데, 이제 앞으로는 만나법의 기도도 추가해야겠다.
④ 이런 만나법을 주셨던 이유에 맞게 살아야겠다. 구원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겠다. 특히, 이스라엘의 자기 중심성과 반대되는 예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겠다.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김용의 선교사님의 표현대로 "저 죽을 십자가 지고" 살아야겠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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