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2-29)
요한복음 맥락 속에서
- 빛이요,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고,
-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림
-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 믿지 않음의 원인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6장의 맥락
-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6장
-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서 군중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 제자들만 추려서 바다 위에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 군중들도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 했다.
-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따를 때에는 '메시아'로 고백했는데, 그럼 그들이 믿었던 메시아는 무엇인가? 자신의 욕망이 뒤섞여 있는 메시아다. 성경의 구원자가 아니라, 내 소원을 이뤄주실 분으로 생각한 것이다.
- 이제 긴 예수님의 설교의 시작이다.
-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시며, 하늘로부터 오신 생명의 떡임을 알려주시는 중
- 솟아나는 생수처럼,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다.
- 떡은 예수님.
- 먹는다는 개념은 동질화, 동일화를 말한다. 예수의 사람이 되고, 작은 예수가 되어 가는 것. 갈라디아서의 예수가 산다고 표현한 그것
- 오늘 본문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그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핵심
도입. 시대속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
- 온전히 자기 안위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
- 자신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높여주는 시대상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 1)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나도
- 예수님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모습
- 배 타고 가버나움으로 예수를 찾으러 가는 열심
- 두려움도 이겨내는 열심 아닌가, 전 날에 어부들도 어찌할 수 없는 폭풍우가 불었는데?
- 왜 가는가? 예수님이 배불리 먹여주셨기 때문에, 먹을 것을 위해서
- 또,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자기 욕망
-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 했음은 물론이고
-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왕을 삼아, 로마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유대적 메시아 사상과도 맞지 않는,
- 오로지 육적인 배불림을 위한 왕으로 삼으려는 자세
- 썩을 양식이란 무엇일까? 식욕, 성욕, 권력욕, 가문욕...
- 썩을 양식들의 공통점, 자기를 위한 것들
- 결국 자신이 살아나는 것이 목적
- 살기위해 일하는 것? 죽지 않기 위해 일하는 것?
- 구약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너희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었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
- 창세기 : 선악과 약속, 죽음 / 살리고 죽이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었다.
- 선악과를 먹고 '우리처럼 될까', 생명의 주인이 '사람(나)'라고 생각하는 죄인이 된거다.
- 죄인 우리 모습이 이렇다.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 그래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로 보기 시작한다. 생명의 주인으로
- 예수님 찾아나선 사람들의 기대감은 무엇인가? 자기를 먹이는 존재를 찾은 기쁨과, 그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의문이 동시에 나타남,
- 25절, 언제 여기로 오셨나이까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음을 지적하심
- 배불렀던 경험?
- 예수님은 이들이 배불러서 자신을 찾아온 이유라고 못 박으셨다.
- 26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1)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예수님을 찾는 모습과 그 동기 중에서, 배부른 까닭으로 찾는 것이 최악의 모습이다.
- 이런 모습이 나에게, 우리에게 있는건 아닐까?
- 언제 예수님께 간절히 구해보았나, 내가 구했던 간절함의 목적이 무엇이었나?
- 예수님께 배 타고 좇아갔던 사람들의 모습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면, 우리의 신앙 수준이라는게 어떻게 된건가.
우리가 구할 것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다.
우리는 또 무슨 일을 할지부터 고민하다.
- 양식은 인자가 주시는 것이다.
- 약속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다.
- 예수만이 참된 구원과 구원으로부터의 평안과 안전함을 줄 수 있다.
- 그런데 사람들은 또 내가 무엇을 해야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수가 주시는 분임을 바라보는 것인데, 차분히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요한복음에서 예수를 만났던 모든 인물들이 그랬다.
- 니고데모는 율법의 삶을 추구하는 일을 했고,
- 수가성 여인은 야곱의 우물을 붙잡는 일을 했다.
- 오늘 등장한 무리들은 예수를 좇는 열심의 일을 했다.
- 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한다.
- 그래서 그들은 물었다. 28절,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어떤 일을 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행동을 말씀하시지 않고, '믿는 것'을 말씀하신다.
- 무엇을 믿는가?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 무엇을 믿는가?
-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 요한복음 맥락으로는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 곧 빛이요 생명으로 오신 분임을 믿는 것이다.
-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 죄악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새 생명을 부여받았고, 흑암으로 어두운 우리의 마음이 예수의 빛으로 비추어진 것을 믿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해결할 수 없는 갈증과, 채울 수 없는 욕망을 해결하시는 분인줄 믿는 것이다.
- 믿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상태다.
믿음은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
구원을 위해 믿음 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믿음은 나로하여금 구원에 관하여 어떤 일도 못 하게 만들어버린다.
- 이것이 믿음의 상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 썩어없어질 양식과 그것을 취하려는 어떤 행동도 나의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직시하고, 그 어떤 행위를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믿음의 상태다.
- 다만, 내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심을 바라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 갈라디아서에는 내 안에 사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했고,
- 요한복음에서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으로 표현했다.
- 먹는 것은 그와 동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되었다가,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 거룩한 성장을 다음주에 본문에서 보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육신의 썩어질 양식은, 그야말로 썩어없어질 것으로 여기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 바울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게 되는 모습이다.
동시에 믿음은, 구원 이후에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다.
-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 믿음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해서, 육적인 어떤 일도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다.
- 믿음을 근거한 삶은 세상의 썩어질 모든 양식을 곧 썩어질 육의 양식으로 여기게 되지만,
- 구원의 확신 이후에 그 믿음을 근거로 우리의 삶에 더 많은 일을 하게 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열렬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피조세계를 아끼고, 그 안에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고
- 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근거로 이웃에게 베풀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이 늘 위태함에 처해있다.
- 예수님의 구원하심으로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됐고, 더 많은 일을 예수의 열심으로 감당하게 된다.
-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이 다시 썩을 양식을 구하는 행동으로 옮겨가게 한다. 위태롭다.
-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도 넘어짐이 있다.
- 예수님이 지금 말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원한 것을 찾으라고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찾는 모습에서도 얼마든지 썩을 양식을 구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마태복음,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상황처럼, 그 짧은 순간동안에도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불신앙의 상태로 빠져가는 것을 보게 된다.
포기해야 하는가? 극단적으로 빠져야 하는가?
- 여차하면 썩을 양식을 구하는 상태가 되는 인간이기 때문에, 눈 앞에 육적인 것들을 다 치우고, 혼자 산 속에서 예수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 산 속에서 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면, 나는 혼자만의 믿음 세계에 갇혀 이웃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극단적인 믿음생활을 고백하고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가?
- 고민이 된다.
-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가, 우리의 숙제다.
- 예수님 때문에 배가 불렀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믿음으로 인해서 내 어려움이 해결되고, 영혼이 채워지는 경험이 있었다.
- 예수님으로 인해서 배가 불렀던 경험이 나쁜 것이 아니다.
-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배가 부를 것이라고 믿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다.
- 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배 불렀고, 이 배부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는 것과
- 예수님 때문에 배 불렀더니, 예수님의 존귀함과 완전하심, 하나님이심이 믿어져서 예수님을 좇는 것은 다르다.
- 예수님이 옆에 계시지만 지금 내게 떡이 없을 때,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떡이 없는 것이 아니라, 떡이 없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예수님은 완전하심을 믿는 것
아이러니 하지만, 믿음의 삶의 위태로움은 믿음으로만 해결이 된다.
- 다시 믿음이다.
- 믿음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오시고, 구원하시고, 세우심을 믿는 것이다.
- 예수만이 나를 살리시고, 빛이신 그 분만이 어두운 내 마음을 밝히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 나는 여전히 쓰러지고,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실패할 것이지만, 그 분이 나를 이끌어 구원하실 것임을 믿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하는 나의 어떤 일 속에서도, 나는 다시 썩을 양식을 구하는 삶의 자세와 믿음의 태도로 빠질 수 있고, 빠질 것임을 알지만,
- 예수가, 나를, 붙들어 완전케 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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