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신구약 중간사: 하나님은 침묵하셨는가?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 400년의 시간은 흔히 '하나님의 침묵기'로 불린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갈 4:4).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조용히 때를 준비하고 계셨다.
이 기간 동안 제국은 바뀌고, 문화는 변했으며, 신앙도 분열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적 움직임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한 무대가 되었다. 헬라어가 공용어가 되었고, 로마의 도로망이 깔렸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곳곳에 회당을 세웠다. 하나님은 말씀 없이도 일하고 계셨다.
이 장에서는 신구약 중간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볼 것이다. '때가 차매' 오신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 침묵 같은 시간 속을 다시 걸어가 보아야 한다.
1. 침묵의 시간인가, 섭리의 시간인가 (중간사를 읽는 관점)
신약이 시작될 때, 세상은 말라기 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새로운 언어가 사용되었고, 정치 구조가 바뀌었고, 신앙의 모양도 크게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고, 선지자도 없었다. 그러나 이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숨겨진 준비였다.
성경신학자들은 신구약 중간사를 하나님의 침묵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가 조용히 역사를 움직이고 계셨던 시간으로 본다.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헬라 문화가 퍼지고, 로마 제국이 길을 닦으며 세상을 하나로 연결했다. 이런 변화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복음이 빠르게 퍼질 길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지며 곳곳에 회당을 세웠다. 이는 훗날 사도 바울과 초대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전략적 거점이 되었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모르는 사이에 끝내 갖추고 있었다.
침묵처럼 보였던 시간,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 없는 말씀으로 세상을 준비하고 계셨다. 중간사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않는 믿음을 배우는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2. 제국이 바뀌다 – 역사의 큰 흐름 속에 준비된 길
구약 마지막 시대에 유대 땅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했다. 헬라 제국은 짧았지만 강력했다. 언어, 문화, 사상이 헬라화되었고, 그 영향은 신약 시대까지 이어졌다.
알렉산더 사후, 그의 제국은 분열되었다. 유대 땅은 톨레미 왕조(이집트)와 셀레우코스 왕조(시리아) 사이를 오가며 고통받았다. 특히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성전을 모독하고, 유대교 신앙을 탄압했다. 이에 맞서 마카비 가문이 일으킨 저항은 하스몬 왕조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비록 이 독립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유대 민족에게 신앙과 자유를 지키려는 불꽃을 남겼다.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유대는 다시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헤롯 가문이 등장했다. 신약의 첫 장면, 헤롯 대왕 치하의 유대는 로마의 질서 속에 있었고, 정치적 독립을 잃은 채 종말론적 기대만이 커져가고 있었다.
이 모든 제국의 교체는 단순한 권력의 교대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제국들의 욕망과 전쟁, 승리와 패배 속에서도 구속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은 유대인의 귀환을 가능하게 했고, 헬라어는 세계 공용어가 되었으며, 로마의 도로망은 복음이 퍼질 길을 열었다. 제국은 바뀌었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메시아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3. 신앙이 갈라지다 – 유대교의 변화와 분열
제국이 바뀌는 동안, 유대교 내부에서도 조용한 균열이 일어났다. 오랜 포로 생활과 외세 지배는 신앙을 지키려는 몸부림 속에서 다양한 길을 만들어냈다. 같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 믿음의 모양은 점점 달라졌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생명의 길로 삼았다. 성전이 사라진 시대, 말씀을 붙들어야 산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율법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규칙의 무게가 되었고, 본질 대신 형식을 붙드는 일이 많아졌다.
사두개인은 현실을 택했다. 성전과 제사를 중심으로 권력을 유지했고, 로마와의 협조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지켰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권세를 더 가까이 두었다.
에세네파는 세속을 등졌다. 광야로 나아가 공동체를 이루고, 경건과 정결을 목숨처럼 여겼다. 세상이 오염되었다고 믿었기에, 자신들만의 순결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길을 기다렸다.
열심당은 칼을 들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치적 해방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무력으로 로마에 맞섰다. 신앙은 기다림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회당"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성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어디서든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나누었다. 회당은 디아스포라 곳곳에 퍼졌고, 훗날 복음이 퍼져나갈 발판이 되었다.
말씀이 흩어진 시대, 신앙도 흩어졌다. 그러나 그 흩어진 신앙의 조각들 위에, 하나님의 약속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은 분열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4. 세속성과 신앙의 긴장 – 헬레니즘 문화의 도전
헬레니즘 세계는 단순히 정치적 지배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삶의 방식, 사고의 틀, 인간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까지 바꾸어놓았다. 헬라 문화는 다신론과 인간 중심의 사고를 통해, 하나님을 중심에 두었던 신앙적 세계관을 흐리게 만들었다.
유대 청년들은 체육관에서 훈련하며, 헬라어로 토론하고,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헬라문화의 세속적 매력과 충돌했다. 말씀은 삶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났다. 전통과 헬라 문화 사이에서, 유대인들은 갈등했다. 지키려 하면 시대에 뒤처졌고, 받아들이려 하면 신앙이 흐려졌다.
헬라 문화는 신앙을 직접적으로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용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신앙의 긴장과 경외를 약화시켰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 밀렸다. 영원의 가치 대신, 당장의 쾌락과 지식이 높임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한 이들을 남겨두셨다. 세속의 흐름 속에서도 말씀을 놓지 않았던 이들, 헬라 세계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다렸던 이들. 그들은 적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5.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대 – 영적 갈망의 고조
400년 동안 선지자는 침묵했다. 그러나 침묵은 기대를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기다림을 통해 인내와 믿음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백성들은 말라기의 마지막 예언을 붙들었다.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그" 선지자가 다시 나타나는 날, 다시 말해 "메시아"가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침묵기는 종말론적 기대도 더욱 높였다. 선지서들이 재조명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끝이 가까웠다고 믿었다. 메시아는 정치적 해방자로 올 것인지, 아니면 영혼을 구원할 구세주로 올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
세상은 준비되고 있었다. 헬라어는 모든 지역에서 통용되었고, 로마의 도로망은 국경을 넘어 길을 열어두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곳곳에 회당을 세워, 말씀을 중심으로 모였다. 세상은 단 하나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 어디로든 복음이 퍼져나갈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하나님의 때를 향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했다. 때가 찼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역사의 가장 어두운 밤이 깊어갈 때, 새벽 별 처럼 메시아가 오셨다. 구원의 길이 열렸다.
6.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다 – 하나님의 정밀한 시간표
갈라디아서는 신구약 중간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4, 5).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셨다. 또한 결코 늦지 않으셨다. 역사는 사람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정밀한 시간표 안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의 언어는 하나로 통일되었고, 길은 열렸으며, 사람들의 영혼은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다. "때가 차매!" 무대와 조명은 모두 준비되었고, 이제 감독의 큐 사인과 동시에 막이 오를 차례였다.
하나님은 로마 제국의 칼 아래서, 헬라 문화의 물결 속에서, 유대교의 분열과 혼란 가운데서 조용히 일하고 계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혼란의 시대, 분열의 시대, 침묵의 시대 한가운데 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얼마나 정밀하게 구원을 준비해오셨는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때가 차매!" 이 말은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르익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 한가운데로 쏟아졌다는 선언이었다.
우리는 이 중간사를 통해 배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신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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