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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아침만나

아침묵상일기_출애굽기10장_너의 완악함을 끝장내라

1. 내용 요약

바로왕의 완악함이 이어진다.

이집트는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을 경험한다. 

 

2.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

(1) 나는 나를 네게 보이고 싶고, 또 전하고 싶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들고 모세에게 오셨다(출애굽기 3장). 

그 다음 모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이스라엘 백성들과 또 바로왕에게도 보내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 2가지가 오늘 말씀 첫 부분에 나온다

그들은 각각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 (출10:1-2)

이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분명히 간직하고 지내야겠다. 

 

하나님은

보이기 원하시고,

전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전하기 원하십니다!"

 

 

(2) 내가 여호와인줄을 알리라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 구원 사역의 의도는 출애굽 사역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출애굽 사건으로 부터 약 3천년(3469년)이 지났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그동안 한시도 멈춤 없이 지금껏 진행중이며, 

이제 예수 안에서 영적 이스라엘이 된 나도 이 구속사에 포함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이유, 나를 구원하신 목적도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다.

오늘 읽은 말씀 대로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출10:2). 

 

여기 등장하는 "안다"는 것은

전 인격적인 앎이며,

관계가 핵심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은

나와 깊은 관계의 앎을 함께 갖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을 내게 보이셨고,

계속 보이시며,

서로 알자고 하신다. 

 

나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부름받았고, 

하나님을 알리는 존재가 되었다. 

 

한편, 이 목적은 강렬하다.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들어있는 소원은 강렬하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메달려 죽게 하실 정도로 내게 자신을 알리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소원이다. 

 

나는 하나님의 강렬한 소원에 물들어있는 존재다.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내게 간절히 알리고 계심으로, 

나도 하나님을 간절히 알고자하며, 

알리고자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방법이자, 하나님의 교회 개척 방법이다!

 

 

(3)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은 3절에서 하나님이 바로왕에게 주셨던 말씀이다. 

그러나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어느때까지냐"

나는 미루지 말고, 대답해야한다.

"어제까지입니다!"

이것이 옳은 답이다. 

"오늘"은 나의 완악함을 끝장낼 기회의 날이다!

 

끈질기게 하나님을 저항하고 불신하며, 나 중심적으로 신앙하고, 내 멋대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바로왕의 완악함이 곧 내 모습이다. 

 

나는 자아가 없는 리모콘 처럼,

나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손에 붙들려서

자아 없이 쓰임받는 순한 도구가 되고싶다!

 

나의 완악함을 끝장내버리고 싶다!

 

 

 

(4) 분별력 없는 상태가 되었는지 돌아보며 완악함을 끝장내라

7절 끝부분에서 가슴이 철렁 주저 앉는 느낌이었다.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7절)
재앙을 7번이나 처 맞고도 정신못차리는 완악함에 사리분별력이라고는 전혀 없다. 

 

완악함은 무시무시하다. 

귀가 있어도 안들리고, 눈이 있어도 안보이는 상태를 만들어버렸다. 

그야말로, 살았으나 죽어있는 상태다. 

좀비같은 상태다. 

 

나도 완악함을 오늘 끝장내지 않으면 비상식적이고도, 판단력이 흐린 사람으로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게 될 것이다. 

 

 

(5) 겸손하라

이어서 8절에서도 가슴이 철렁 주저 앉는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8절)

모세는 분명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다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바로왕은 "누구 누구냐"라며 거만하다. 

 

처음에는 출애굽은 안된다고 하던 바로왕도,

재앙을 처 맞을 때 마다

마음이 일시적이나마 바뀌었다.

 

그럼에도 "누구 누구냐"라니,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다. 

 

분명히 다 나가겠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누구 누구냐"라니......ㅜㅠ

 

신하들의 권면(7절)처럼 7번째 재앙에서 이미 이집트는 망했다.

그래도 바로왕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거만하다.

 

완악함은 무시무시하다.

 

완악함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독극물과도 같다.

사리분별력을 없애는건 완악함의 시작에 불과하다.

"......누구 누구냐"

이것이 완악함의 진행 단계다.

 

나도 이 소름돋는 완악함을 끝장내야겠다. 

반드시 완악함을 거절해야겠다. 

 

특히, 말씀 앞에서 바로식의 완악한 태도를 갖는 것을 무시무시하게 여기며 겸손해야겠다. 

마치, "내가 알아야 할 성경 말씀이 '누구 누구냐'(무엇 무엇이냐)!" 막 이러면서 일부만 읽고 묵상하는 일부터 끝장내야겠다.  

성경 말씀 전체를 읽고 또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가르치기를 전념해야겠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6) 성경 통독을 재개하라. 

그러고보니, 기도는 어느정도 회복되었는데, 아직 성경통독은 회복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매일 성경통독"을 나는 어느새 중단한채다. 

 

이것이 나의 완악함이다!

내가 성경 통독을 중단했다는 사실 자체를 왜 인지하지 못하고 지냈을까?

다만, 

"누구누구냐" 이런 거만함으로

성경을 부분적으로 읽고 부분적으로 묵상하기만 해왔다. 

"내가 읽어야 할 성경 챕터들은 '무엇 무엇이냐'"라는 거만함이 내게 있었는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가 내게 임했던 것 같다. 

이사야 43: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마가복음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나는 성경을 통으로 읽고 묵상하는 일을 재개해야겠다. 

지금 바로 시작이다!